여행길에서 만난 다리                     

                                                                                                                                           이희숙

 

  고국 방문길에 올랐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차창을 내다보니 강이 흐른다. 서울이 조선 시대 한양으로부터 최대 도시가 된 중심엔 한강이 있었다. 민족의 젖줄인 한강 물결이 지나온 세월을 말하는 듯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넜다. 군데군데 놓인 다리가 무려 31개라고 한다. 한국 전쟁 시 폭격을 맞아 끊겼던 아픔을 이겨내어 '한강의 기적'을 이룬 다리다. 남과 북을 잇는 다리가 자태를 뽐내며 반겨줬다. 다리 위를 이어주는 아치의 고운 곡선은 강물의 흐름을 부드럽게 해주었다. 내 마음도 흐르는 강물 따라 추억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다리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장소였다. 지금은 양화대교라고 불리는 제2 한강교 다리를 걷곤 했다. 양화도 절두산 순교지 계단에 앉아 앞날의 포부를 나누며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엔 휴강으로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뚝섬에 갔다. 섬이 아니면서도 장마 때 큰비가 오면 육지와 떨어져 섬이라 불렸던 곳이다. 우리는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개발되지 않았던 뽕나무밭 속의 봉은사를 찾아 명상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지금은 영동대교가 설치되어 화려한 신도시가 탄생했지만 내 기억을 과거 속으로 연결해 주었다.

 

  긴 강줄기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외국에서 살았다. 지리적 간격처럼 마음의 거리도 멀어져 있었는지를 생각했다. 한강은 계속 흐르고 있었음을 실감하며. 강 주변에 조성된 공원, 분수, 조명을 뿜어내는 멋진 야경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제의 당신에게 지지 마세요."라고 적힌 다리의 글귀가 눈에 띄었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자살 예방 글귀라고 운전기사가 설명했다. 발전한 모습 뒤에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일까? 경제, 생활 수준과 행복지수는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 속에 다리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모든 다리가 '생명의 다리'로 거듭나길 바라며 시내로 접어들었다.

 

  '마음을 이어주는 기찻길'은 최고속도로 전국을 하루 생활권에 넣었다. 달리는 KTX에 몸을 싣고 부산역에 도착했다. 대합실 유리창을 통하여 푸른 바다 위로 걸쳐진 다리를 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몇 년 만인가? 40년 만에 찾은 부산이다. 시간과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안내자 없이 시내버스를 타고 부산의 명소를 찾아다녔다. 용두산 공원에 오르니 우뚝 선 전망대를 맴도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마음을 열어 주었다. 발아래 펼쳐진 바다는 어제와 오늘을 하나로 묶어 주는 듯했다. 녹음이 우거진 꽃 담길을 걸어 내려와 광복동에 즐비한 상가에 들어섰다. 진열된 외국 상품들을 보며 경이로웠다. 반면 공존하는 재래시장의 다양한 물건들을 기웃거리며 눈이 즐거웠다. 국제시장의 정겨움을 뒤로 하고 바다로 향했다.

 

  영도다리 앞에 발길이 멈췄다. 어린 시절에는 번쩍 들려진 다리 아래로 배가 지나는 모습을 보며 신기해했다. 친구들과 나는 영도다. 영도가 자라서 12시가 되었네노래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했다. 먼 기억 속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다리가 올라가길 기다렸다. 영도다리는 추억 속으로 나를 데려가 주었다. 다리는 사람과 배를 흘려보냈다.

 

  해운대로 향했다. 길을 묻는 나에게 "비 오는데 와 해수욕장을 가노?" 지나가는 아줌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구름 낀 바다 위로 광안대교가 은은하게 모습을 나타냈다. 길게 뻗친 다리를 바라보며 비가 내리는 모래사장을 걸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휩싸여 밟는 모래 결이 부드러웠다. 광안대교는 부산의 중심인 서면과 해운대를 잇는 2층 구조의 최대 해상 복층 교량으로 Diamond Bridge로 불렸다.

 

친구를 만났다. 미국에서 20년 살다 귀향한 오랜 동무이다. 우리는 유리창으로 싸인 찻집에 앉아 소나무 가지 사이에 떠 있는 오륙도를 바라보았다. 푸른 정취를 가슴 속 깊이 담았다.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를 품은 바다의 매력에 빠졌다. 바다는 넓은 품에 나를 힘껏 안아 주었다. 멀리 보이는 섬조차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내 마음이 다리가 되어 섬에 닿았기 때문이리라.

 

  빗방울이 창을 흘러내리며 우리 속내를 두드렸다. 창가에 앉아 그녀가 역이민하여 고국 적응에서 겪은 어려움을 나누었다. 이야기는 빗방울 되어 그칠 줄 몰랐다. "어쩌니!" 시계를 보며 놀랐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에 늦은 것을 알고 당황했다. 그녀의 빠른 판단과 대응으로 택시를 타고 광안대교와 고가도로를 달렸다. 가장 빠른 길이라고 했다. 기차 출발 직전에 부산역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좌석에 앉으며 바로 그 다리를 이용했기 때문에 기차를 탈 수 있었다며 큰 숨을 내리 쉬었다. 다리의 역할에 고마워하며 짜릿했던 부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행길에서 만난 많은 다리는 나를 자연 속으로 데리고 가 주기도 했고, 마음이 하나 되도록 이어주기도 했다. 나도 서로의 영혼을 이어 막힌 길을 뚫고 소통하는 누군가의 다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