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익숙한 모습이다. 엄마의 손과 많이 닮아 있다. 그리운 기억 싸한 느낌으로 새겨져 있는 그림과 겹쳐진다. 엄마의 생애, 이미 나이를 훨씬 넘긴 세월을 지나고 있는 막내딸의 가슴에 박제가 굵은 손마디는 언제나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한다. 내게도 오랜 시간을 살아내느라 열심히 살아온 흔적이 손에 남았다. 비교적 일찍 직장 생활을 마감했지만 돌아보니 없이 달려왔다. 선택할 기회를 가질 여유 조차 없이 생존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했다.

 

내 손은 매우 크다. 키와 균형이 맞지 않을 만큼이다. 흔히 여자는 자그마한 신체조건을 가져야 후한 점수를 받는다는데 내겐 해당사항이 아니다. 게다가 이젠 마디까지 굵어져 웬만한 남자의 손과 비겨도 지지않을 거친 손이 되었다. 엄마의 손을 그대로 닮았다. 손으로 하는 일도 규모가 손 크기와 마찬가지다. 음식을 준비해도 항상 잔치 분위기다. 큰손 덕분에 늘 부자의 기분으로 살아온 듯 하니 나쁜 버릇만은 아니다.

 

아이의 작은 손을 잡아 주었던 기쁨을 기억한다. 안에 온전히 들어 모든 , 생명까지도 맡기던 가여린 그날의 환희를 감사한다. 그 아기를 위해 내 손은 열심히 일했고 늘 아기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고 두손 모아 기도했다. 부모가 그러했듯 그렇게 살아왔다. 아기는 자라서 자신의 아이의 손을 다시 잡는다. 사랑만을 가득 품은 세상에서 제일 손이다.

 

사랑하는 이와 처음 잡았던 손은 어떤 느낌이었나. 부모님께 받은 사랑과 자식에게 내주었던 그것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내가 기대는 마음, 나를 의탁하는 약한자의 모습이었을까. 그는 자기 손을 내밀었고 두 손을 맞잡고 33년의 시간을 함께 하고 떠났다. 지금까지 내 삶의 절반을 곁에 머물러 주었다. 약속대로 언제나 내 버팀목으로 지켜주었으니 또한 고마운 사람으로 가슴에 새긴다.

 

알버트 뒤러의 '기도하는 ' 그림을 생각한다. 화기 자신의 우정에 근거한 이야기는 따뜻하면서도 슬프게 들린다. 뒤러의 그림 공부를 위해 먼저 노동을 자청한 친구의 구부러진 손은 경외롭게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얼마큼 나를 내어줄 있는가.

삶의 시간이 채워지면서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계산하지 않고 조건없이 사랑하고 힘들 때 바로 달려와 주는 우정을 감사한다.

 

후리웨이 출구에 도움을 구하는 글귀를 들고 홈리스 한 사람이 서 있다. 마음으로는 손을 잡아주고 싶지만 쉽지 않다. 푼돈을 내밀고 그의 손이 닿지 않도록 얼른 차창을 올린다. 세상은 왜 이리 공평하지 않은가, 괜스레 풀지도 못할 명제 앞에 큰 숨을 내쉰다. 이 나이가 되도록 진정한 인간애를 다지지 못한 부끄러움 앞에 고개 숙인다.

 

인생 후반에 들어 새 친구 하나를 만났다. 지금껏 각자의 역동적 삶을 살아낸 다음 새롭게 만난 정신적 응원자의 존재가 되었다. 사람이 일생 동안 겪을 수 있는 아픔을 일찍 알아버린 우리는 서로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어 손을 잡았다. 남은 시간 동안 좋은 동반자가 되자고, 필요할 때 손을 내어 주자고.

얼마 전 의사에게서 난소 종양 제거를 위한 수술을 권유 받았다. 3주 후로 스케줄이 잡혔다. 이미 두 아이를 출산할 때 제왕절개를 한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두렵기는 그때와 다름없다. 모든 과정을 집도할 의사의 손에 의탁할 밖에. 생명을 다루는 숙련된 손이라 믿고 맡긴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두 손이다. 그 손으로 무엇을 할 때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가. 나를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도와준 고마운 존재다. 옛부터 목주름과 손은 나이를 속일 수 없다고 했지만 이젠 통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예쁜 손을 만들기 위해 다듬고 손톱을 치장한다.

거칠대로 거칠어진 마더 데레사 수녀의 손을 본 적이 있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손주름을 보았다.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사랑의 깊이를 느꼈다.

 

내 손을 다시 본다. 마디 굵은 큰 손, 늙은 손, 결코 예쁘진 않다. 두손을 모아본다. 깍지도 끼어본다. 아직은 쓸만한 손이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친 손, 대학시절 기타를 치던 손, 아이들을 먹이고 품어주던 손,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주던 손,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한 손, 고통 속에서 가지런히 모으고 정성껏 기도하던 손, 소중한 내 두손이다.

이제부터는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손으로 쓰고 싶다. 건강할 수 있다면 지속되는 그날까지. 누구 한 사람이라도 이 손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