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함께한 캐나다 여행
동생과 미국에 살면서 여행을 함께 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각자가 가족이 달렸기 때문이다. 함께 여행 가기는 이번이 세 번째이다. 캐나다 캘거리에서 10월 12일 민초 해외문학상 시상식이 있어서 동생과 함께 갔다 왔다. 늘 몸이 연약한 터라 함께 여행 가자고 말을 건네기가 참 어려웠다. 둘 다 팔십 세에 가까운 터라 더욱 여행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생에게 시상식에 함께 가자고 했더니 기꺼이 축하해 주어야지 하며 따라나섰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하여 곤하게 잠을 자는데 느닷없이 알람이 울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전화가 온 줄 알고 끄지 않고 두었더니 계속 벨이 울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동생 전화기를 살피니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그렇게 요란하게 알람이 울리고 오랫동안 지속되었는데도 동생은 깨어나지 않고 코를 예쁘게 살짝 골면서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나는 정말 놀라고 놀랐다. 나는 금방 깨어났는데 잠에 취한 사람처럼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암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 오랫동안 살아남아 문학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 보고 놀랄 때가 많았다. 그 힘이 바로 숙면이란 것을 알아내었다. 나는 바스락 소리만 나도 잠에서 깨어나는 데 그렇게 깊숙이 잠을 잘 수가 있을까 싶어 놀라웠다. 동생은 위장을 십 분의 구를 잘랐기 때문에 조금만 과식하여도 음식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다.다. 같이 식사할 때마다 마음 아파하며 안타까워 한다.
시상식이 끝나고 그 다음 날 캘거리와 밴프에 있는 록키 산맥을 주최 측 회장님과 관광을 나섰다. 온 산은 눈이 와서 하얗게 옷을 입고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길은 눈으로 덮여 미끄러워 다니기가 불편했는데도 동생은 거리낌 없이 어찌나 잘 걷는지 두 번째 또 놀랐다. 나는 미끄러워 잘 걸을 수가 없어서 회장님 팔 장을 의지하며 살살 걸었다.
레이크 루이스를 반 바퀴 돌면서 구경하고 난 후 사또 레이크 루이스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함께 나누었다. 동생은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옆에서 보면 나도 덩달아 잘 먹게 된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힘들어하지 않고 잘 견디어 내었다. 동생이 측은하면서도 대견스럽고 장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언제 또 함께 여행 올 기회가 있을까 싶어 둘이서 정답게 밤을 새워가며 각자가 겪었던 여러 가지 인생살이에 열을 올리며 얘기의 꽃을 피웠다.
민초 해외문학상은 내 일생에 잊히지 않는 훌륭한 상이었다. 부족하여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이 뽑아 주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하며 기뻤다. 주최 측 회장님께서 많은 손님을 초빙해 주셨고 푸짐한 음식과 수상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남달리 깊었다. 큰 상을 받았으니 앞으로 걸맞게 좋은 시를 써야겠다는 부담감이 매우 크다. 열심히 쓰고 또 쓰고 부단히 노력하리라 결심해 본다. 노력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영감을 주셔야 하고 지혜를 주셔야 하므로 부단히 기도하고 있다.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오빠들도 힘이 컸지만, 잊히지 않는 두 분의 맨토가 계셨는데 한 분은 피천득 대학교 영어과 주임교수셨고 또 한 분은 스코필드 박사님이셨다. 교수님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명작 100권을 졸업할 때까지 읽어야 한다며 리스트를 만들어 주셨는데 제일 첫 번째가 성경이었다.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나로서는 성경이 그렇게도 훌륭한 문학작품이란 것을 몰랐다.
두 번째 맨토는 스코필드 박사님이시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 수속을 마쳤을 때 폐결핵 진단을 받고 인천 송도 적십자 결핵 요양소로 발걸음을 옮기며 통곡울 했다.
그때 나를 가장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스코필드 박사님을 잊을 수가 없다. 영어 성경과 격려의 말씀이란 책자와 기도문이란 책자를 주시면서 읽고 믿음을 갖고 병에서 회복되기를 바란다며 기도해 주시고 계속 병원으로 위로의 편지를 보내오셔서 나는 절망의 늪에서 추스르고 에수님을 만나 나의 상처를 치유할 수가 있었다. 스코필드 박사님은 내 생명의 은인이셨고 잊을 수 없는 나의 스승이셨다. 그때 받은 스코필드 박사님의 친필 편지를 평생 간직했다가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귀한 자료라면서 한국에 유일무이한 친필편지라며 달라고 하셔서 여러 장을 모두 드리고 딱 한 장만 기념으로 간직하고 있다. 영문학자이시고 시인이시고 수필가이신 피천득 교수님에게 영문학과 희곡과 시를 사사하였다는 것이 나로서는 큰 영광이고 자랑스럽다. 내가 오늘날 시인이 된 것은 모두 두 분의 덕택이고 그분들의 공이 지대하시다. 깊은 감사를 두 분께 드린다. 동생과 함께한 캐나다 여행은 이래저래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여행이었다./중앙일보 '이 아침에,2019년 10월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