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동창 사진작품 10-20-2019
사람 손수건 / 김영교
지난달에 우리 집은 한인타운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 내외분의 귀한 방문을 받았다. 그 목사는 예수를 등에 업고, 사모는 고구마를 가슴에 안고 오셨다. 만개한 뒷 정원의 탐스러운 군자란이 두 분 발길을 반갑게 맞았다. 정장에 신발도 넥타이도 단정한 목사님 주말 옷차림은 너무 보기 좋았다. 그날따라 편안한 표정에 맑은 목소리는 우리 집 안팎을 가득 채웠다. 꼭 필요한듯 활력이 출렁댔다. 행복한 아침나절이었다. 마침 생일이라 루디아의 방문은 미리 계획된 것이었다. 새벽 기도 후 지나가는 길에 들린 케이티도 합석하게 되어 우연히 작은 주말 오전 예배가 시작되었다. 울림이 있는 말씀 - 다윗에 관한 이야기였다.
시편 27장 4절 , "곧 그것을 구하리니
살아도 죽어도 여호와와 함께하는 영적 삶을 지극히 사모한 다윗, 그런 가정이기를 그 목사님은 기도해 주신 것이다. 여호와 그 존재의 아름다움, 울림이 있는 설교와 찬송, 그리고 절절한 기도...마음은 감동 물살로 흐르고 고마운 생각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먼 훗날까지 그해 4월 토요일 말씀은 실내 벽들도 마루바닥도 경청했다. 기억할 것이다.
가슴을 열고 힘있게 부른 찬송가는 하늘 어디쯤 가 닿았을까. 함께 누린 이 감동, 이 감격, 잊을 수가 없다. 그 즈음 처방약 후유증이 남편 성대를 눌러 목소리가 가늘게 나오고 있었다. 음량이 사라지다 싶이 한 그 성대에서 나온 우렁찬 '아멘‘이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두 내외분의 이중창, 그 높은 곳은 죽음 후의 하늘나라가 아닌가. 날마다 가까이 나아 가기를... 은혜 듬북 끼친 작은 예배였다. 499장 '저 장미꽃 위의 이슬'은 어머니와 남편이 늘 함께 불러 평생 모자의 애창 이중창 (favorite hymn) 곡이다. 예배드리는 아들 모습을 어머니는 하늘나라에서 지금 보고 계실까, 겹치는 그리운 얼굴들, 장미동산이 떠오르고 잊지못할 아름다운 장면들이 생생하게 출렁대며 오갔다. 슬퍼서도 울지만 사람은 기뻐서도 우는가 보다. 왜 이토록 그침 없이 눈물이 솟을까, 민망할 정도였다. 훌쩍거리며 우는 나에게 조용히 건네준 사모의 하얀 손수건, 고마웠다. 눈치코치 없는 난감한 눈물, 콧물 까지 받아준 사모의 따스한 마음 그 자체가 배려의 손수건이었다. 누군가의 아린 마음을 닦아주는 사람 손수건말이다.
예기치 않았던 보너스 주말 예배! 눈물을 닦고 바라 본 창밖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감사가 번지며 환하게 마음이 트였다. 오늘의 귀한 방문을 더듬으며 구겨진 손수건을 밤늦게 세탁 했다. 나는 깨끗하게 빨은 후 다림질도 했다. 주름이 쫙 펴진 손수건, 내 마음도 펴졌다. 모양대로 네모 사각형으로 곱게 접어 봉투에 고마움도 함께 넣었다. 수요일은 선교회 기도회가 있는 날, 참석차 시내에 나가는 김에 전할 참이다.
수요일, 소리소문없이 쇼셜 워커로 일하는 사모 직장 양로병원에 들렸다. 만나 반가워하는 손에 손수건을 건내며 쿠키도 전달했다. 얼굴 전체를 환한 미소로 채우고 사모는 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 동료까지 소개해줬다. 비록 잠간이었지만 서로 인사를 나눌 때 사모 인품 칭찬하는 것을 보니 사모는 직장에서도 헌신하는 봉사자 같았다. 이런 귀한 인연이 가까이 있다는 게 고마웠다.
손수건의 역활을 짚어본다. 손수건 같은 사람이 많을수록 이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 될것이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사모의 일터 양로원에서 저물어 가는 인간의 마지막 지는 해의 여린 여열을 보게 되었다. 맞다드린 이 만남의 시간은 하루가 또 다른 하루가 덤이라는 의미있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머지 않아 내게도 다가 올 훗날의 양로병원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발이 없는 손수건 하나가 내 마음에 걸어들어와 양로병원까지 안내한 퍽 확대된 하루였다.
퇴 11-3-2019
잘 읽었어요. 당연히 할일을 한- 지극히 작은일임에도 불구하고 세심한 반응을 하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코스모스 소녀이십니다.
김영교 선생님, 힘내세요. 화이팅입니다. 응원할께요. 그리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