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수필 21 <모든 날의 노래는> / 김영교
어느 날인가 자녀들은 둥지를 떠나 자기의 꿈을 향해 훨훨 날아갔다. 이제 바쁨을 털고 여행도 하고 책도 읽으며 고즈넉한 은퇴 일상을 즐기려는데 갑자기 얼굴에 돋보기안경 하나 앉는다. 여기저기서 불편함이 기척을 내면서.
돌아보면 인터넷을 하며 혼자서 노는 노치원생들이 많다. 푸른 대학 같은 평생학교에서 서예, 탁구, 라인 댄스 노래교실 독서클럽 등 열심히 배우며 즐긴다. 몸이 시리고 저린 노년도 얼마 던지 즐거울 수 있다고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를 향한 움직임이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듯 이민 1세들은 바쁘게 살아왔다. 열심히 살아가는 대부분은 돈 쓸 시간이 없어 돈을 모으게 된 사람들이다. 돈 버느라 망가진 몸, 그 몸의 회복을 위해 그 번 돈을 지금 다 쓰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주위의 우연곡절을 통해 나 역시 그러지 말아야지를 배우게 된다. 그래서 건강을 나는 으뜸으로 꼽는다. 천하를 얻고도 목숨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랴, 이천년 전부터 이 부르짖음은 있어오지 않았던가.
때와 장소에 따라 적당한 섭생과 더불어 쉼과 노동을 번갈아 하면서 살아가는 지혜야 말로 기조를 이루는 건강 비결이다. 안식일을 돌아본다. 그 쉼표는 육신도 정신도 내일을 위해 꼭 필요하다. 쉴 때 모든 세포는 휴식하게 되고 건강에의 기조를 이룬다. 다음 단계 활성화로 간다. 바로 기쁨을 올곧게 누리는 웰빙에의 다가감이다. 좋은 농산물을 위해 땅도 쉼이 필요한데 하물며 소우주인 우리 몸,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쉼은 휴식을 앞세워 긴장과 속도를 멀리한다. 이럴 때 세포는 자연스럽게 흐르는 역동성을 내재하고 있는 그 이완성을 보게 된다. 마치 일직선으로 빠르게 속도 내며 달리는 기차나 자동차는 일시적 잠정적 치료는 받을 수 있지만 전인적 치유는 움직이고 있는 속도가 해결 못해 준다는 얘기다. 자동차 수리는 차가 멈췄을 때 한다. 인간의 몸이 달리고 있을 때 그 누구도 그 고장 난 몸을 수리 못하는 이치와 같다. 그래서 창조주는 잠이란 휴식기능을 인체에 넣어주고 밤에는 쉼, 낮에는 노동을 구분시켜 주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도 좋다. 키타르시스를 느끼는 영화나 미술전람회며, 음악을 통하여 전달되는 교감은 행복의 다른 얼굴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즐거움은 최고의 명약이다. 소통하며 많이 웃고 나누며 또 누리며 더 웃는다. 이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의 개천에서 물장구치며 놀 때 바로 그 때가 우리 몸속에서 치유가 일어나고 있다는 의학정보, 우리 몸은 참으로 신비스러운 반응체가 아닌가. 아름다움에 많이 접하고 볼 일이다. 감동이 바로 면역기능을 향상시킨다는 의학정보, 이제 이해가 된다.
나는 가끔 기차여행을 하면서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응시할 때 자유로움과 함께 오는 근육의 느슨함, 헐거워지는 기분, 애처럼 즐거워진다. 한 템포 늦음에 긴장은 풀어지고 병든 세포는 정상세포로 돌아가는 이 회복의 메커니즘 때문에 많은 암 환자는 병 고침을 경험하게 된다. 암은 병균이 밖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고 나의 정상세포가 변이된 것이기 때문에 병이 낫는 이런 실례를 나 스스로 직접 경험했다.
스트레스는 답답함이다. 불협화음이다. 부자연스러움이다. 소통하며 밀어내자. 바쁜 삶의 리듬에 익숙한 우리, 이제부터는 속도를 좀 늦추면서 탄력 있되 축 처지지 않고 쉼표 찍으면서 말이다. 시니어 삶도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에 얼마든지 접목할 수 있다. 배움과 소통이 역동적으로 합류될 때, 건강에의 발 돋음이 가능하다고 믿어 글 사랑 창작교실도 7년째 지속되고 있다.
바로 모든 날의 노래는 지금도 우리를 초대한다. 웃으며 배우고 살면서 감사하고 그리고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열린 가슴은 바로 행복으로 가는 건강에의 초대장이다. -퇴 8-20-2019 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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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수필 21 <고학교 후보생> / 김영교
LA 이곳서 만나기로 한 5일 전 산호세에서 쓸어져 7시간 최첨단 수술도 보람 없이 코마에서 못 깨어난 친구가 있었다. 그녀의 시신이 서울에 옮겨졌을 때 이해인 수녀를 선두로 가슴 아파한 사람들 중 장영희가 있었다. 친구는 장교수의 책 (김점선의 삽화) 홍보대사처럼 이곳 동창들에게 보급해 온 장본인이다. 이것이 장영희의 모든 저서가 우리 집 책 가족이 된 경로이기도 하다.
그해 서울 방문 중일 때 신수정은 모차르트의 밤을, 길 건너 수정식당에서 김미자, 김점선, 고영자, 나, 이렇게 넷은 만났고 장영희(불참)의 <생일>과 <축복>을 축하하며 점선이 큰 목소리로 떠들어 댄 게 어제 같기만 하다. 생일은 계단, 밟고 올라가야 하는 축복의 계단, 서로 부축하며 오르고 있었다.
<며느리에 주는 요리책>을 영역한 내 친구*가 먼저 우리 곁을 떠나갔다. 금년 3월이었다. 화가 김점선도 암으로<전선뎐>전기를 펴내고 철새처럼 훌훌 날아갔다. 5월에는 후학들을 위해 할 일이 많은 장영희교수의 작고소식은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다. 너무 아깝고 너무 애석했다. 세 사람이 남긴 빈자리, 엄청나 휘청거린다. 그중 나이 제일 어린 장교수는 늘 그랬듯이 살아남아야 했는데 말이다.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 문학계뿐이랴!
장영희 교수가 그의 영미시 산책집인 “생일”이라는 책에
“진정한 생일은 지상에서 생명을 얻은 날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다시 태어난 날입니다”라고 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소아마비 1급 장애자였지만 굴하지 않고 유명한 영문학자로 대학교수가 되었으며 수필가, 시인, 번역가로 활약하다가 9년간의 암투병을 마치고 지난 5월 9일 세상을 떠났다. 마음이 무너질 때 어떤 위안의 말이 적합하랴! 우리 인간 모두는 <고인(故人) 아무 게>라 불리 울 고(故)학교 후보생이 아닌가.
꽃띠 시절 서울대학 다니는 두 살 위 언니로 인해 장왕록교수룰 알게 되었다. 그에게는 늘 책을 많이 읽는 아리다운 어린 딸이 있었다. 그 딸은 다리가 성치 않은 탓으로 외출대신 늘 집안에서 공부만 했다. 장왕록교수가 젊은 여자들의 다리를 유심히 보곤해서 오해 산적도 있었는데 다 장애인 딸은 둔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아버지의 번역을 도운 영리한 그 딸이 바로 장애인을 입학시킨 서강대의 장영희 교수가 되었다.
얼마 전 이곳 정음사에서 북 사인회 및 피오피코 도서관 문학 세미나에 후배 장영희(사대부고 23회, 나는 11회))를 위해 나는 사회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밝은 미소와 빛나는 큰 눈망울을 맞댄 마지막 체온 나눔이었다. 그가 건네준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 그녀의 육필이 생생한 색깔을 띄고 있다.
‘김영교 선배님:
문학의 숲,
생명과 희망의 숲,
함께 지켜나가요.’
Love 장영희'
라고 쓰여 있다. 장교수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어디 나하나 뿐이랴. 어느 신부가 말했듯이 유명한 칼릴 지브란의 <눈물과 미소>가 적용되는 여자, 가혹 하리 만치 고통의 삶을 눈물 속에서 희망이란 꽃으로 피워 올려 우리에게 넉넉하게 나누어 준 사람, 지금 그 사람을 그리는 글을 쓰며 슬픈 마음을 달래 본다.
스스로 고통스런 삶을 살면서도 그 고통 안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불우한 사람에게 깊은 연민과 관심으로 위로가 되고자 무던히 애쓴 신앙인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의 선물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난 장교수, 본인의 표현대로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이 기적이었다면 이제 살아갈 기적은 우리의 몫이며 마지막 기적은 물론 장교수에게도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갈 기적이 있다고 믿는 믿음이었다. 죽음이 가시적인 어떤 끝이 아니라 이승에서 저승으로 주소변경, 영원한 생으로에 진입임을, 다만 죽음을 통해서만 부활에 동참 할 수 있는 경로임을, 하나님을 뵈옵는 영광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마음속으로 헤아려보며 고개 숙인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은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안겨준다. 삶이 선물인 것처럼 죽음도 또한 선물이지 않는가. 생명질서의 고리로 받아드려야 한다고 머리는 말하는데 가슴은 기뻐하지 않고 눈물을 앞세운다. 산자에 대한 창조주의 배려를 깨우치는데 장교수가, 미자가 점선 화가가 고학교에 먼저 입학 하고 우리들 가운데 그렇게 서있다.
‘생일’에 장영희 교수를 보내며
8-20-2019 퇴
*김미자/사대부고, 이대영문과 동기동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