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가 주는 의미

                                                                                                                      이희숙

 

 

  나는 여러 개의 문을 열며 하루를 시작한다. 밤새 잠겼던 철문을 활짝 열고, 돌아가며 교실 문을 연 다음 창문을 젖히어 시원한 바람으로 환기를 시킨다. 곧이어 현관문을 열며 엄마 손을 잡고 등원하는 아이를 반갑게 맞이한다. 열쇠는 하루를 여는 중요한 물건이다.

 

  두세 살 원생 아이는 열쇠를 좋아한다. 자기 엄마가 열쇠로 문을 열고 차의 시동을 켜는 모습을 보며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그 아이에겐 열쇠가 없는 탓에 장난감 열쇠로 사물함을 여는 놀이에 호의를 가진다. 열쇠를 이용해 여닫는 원리로 만들어진 교구는 아이에게 흥미를 줄 뿐만 아니라 지능계발에 유익하다.

 

  닫힌 공간의 문을 열고자 하는 호기심은 누구나 추구하는 욕구다.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재미있는 발명품이 열쇠일 것이다. 열쇠는 견고한 빗장을 연다고 할까. 굳게 갇힌 비밀의 공간을 손쉽게 공개해준다. 요술과도 같은 비법에 마음을 빼앗긴다. 어린 시절 동화책을 읽으며 비밀화원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그린 적이 있다. 닫힌 사람의 마음을 여는 열쇠도 있으면 좋겠다.

 

  그 문을 열려면 방법을 알아야 한다. 상대를 서로 끼어 맞추는 퍼즐과도 같다. 볼록과 오목의 조화에 열쇠의 비밀이 숨어 있음을. 그를 통해 태극기의 파랑, 빨간색과 같이 음과 양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이치를 배운다. 나아가 우주 만물이 음양의 조화로 형성된 자연의 진리를 알 수 있다.

 

  옛날 집안의 어른은 며느리에게 경제권을 넘길 때 곡간 열쇠를 주었다. 곡간은 쌀가마를 보관하는 곳으로 재물이 있는 곳을 뜻한다. 그곳을 연다는 것은 살림을 주도하는 책임 징표로 통장 관리 소유권을 가지게 된다고 할까. 열쇠를 사진 사람만이 곡간을 열 수 있기에 능력,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집안 여인의 존재가 인정받고 실력을 발휘하는 물건이 틀림없다. 열쇠를 통해 위치 또한 부여받게 됨을 깨닫는다.

 

  나 또한 세월이 갈수록 열쇠의 수가 많아진다. 소유하는 물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 , , 서랍을 열어야 한다. 편리하고 필요한 욕구를 채워주는 대신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열쇠 꾸러미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를 느낀다. 열쇠는 요즈음 일상에서 사용하는 이메일, 은행카드, SNS 등 모든 계정의 비밀번호와 같다고 할까. 기억의 늪에서 헤매는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몇 년 전 세계에서 제일 작은 나라인 바티칸 시국을 방문했다. 성 베드로 성전이 있었다. 성스러운 공간에서 내 눈은 휘둥그레지며 성화와 조각 가운데에서 열쇠를 들고 있는 베드로를 보았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통해 "네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또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리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다."라는 교황의 특권을 부여받았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파하다 순교를 당했다. 그의 시신이 보관된 무덤 터에 성 베드로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하고 120여 년간을 거쳐 베르니니에 의해 바로크 양식으로 완공되었다. 성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많은 사람을 팔로 안으려는 듯 넓고 웅장한 광장이 펼쳐졌다. 위에서 내려다본 광장이 열쇠 형상이라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베드로의 상징인 '천국의 열쇠'를 품은 광경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열쇠의 형태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버튼을 누르거나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지문을 터치해서 문을 연다. 이미 열쇠 대신 스마트 폰으로 차 문을 열도록 개발했다. 언젠가는 무거운 열쇠 꾸러미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변함없이 열쇠를 '문제를 해결하는 키'라고 일컫는다. 나의 닫힌 공간을 열어주고 삶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줄 열쇠는 무엇인지?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려고 노력하는 열쇠에 찬사를 보내며. 열쇠가 나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본다.

 

 

  

5.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