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감사하는가?

                                                                                                                 이희숙

 

 

 

  빵 한 조각을 앞에 놓고 감사하는 주름 잡힌 손에 눈길이 간다. 가족이 둘러앉아 소박한 밥상 앞에서 고개 숙인 모습이 경건하게 다가오는 계절이다.

 

  추수감사절에 정성을 기울여 터키를 굽는다. 누리끼리 구워진 칠면조의 고소한 내음에 긴장하며 살아왔던 마음이 평안하게 녹아내리는 것 같다. 지나온 일 년을 되돌아보며 오늘 내가 여기 있음을 감사로 고백한다. 가족, 건강, 직장, 이제껏 받은 축복, 값없이 주어진 것들이 감사하는 이유일까? 물론 감사의 조건으로 부족함이 없다. 반면 어떤 상황, 어려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감사할 수 있느냐고 나에게 묻는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이 참되고 성숙한 감사임을 알지만 범사라는 단어 앞에 숨을 한번 가다듬어 본다.

 

  아픔을 감사로 이겨냈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맨손으로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이민 초기의 재산은 큰 이민 가방뿐이었다. 친정의 도움으로 가든그로브에 집 한 채를 마련하여 작은 규모의 어린이집(Family Day Care)을 열었다. 첫 출발이었기에 몸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학부모의 관심과 호응으로 6개월 만에 정원수를 훌쩍 넘겼다. 제한된 공간에 허락된 주인가(State Licensed) 인원수를 초과하게 되어 걱정스러웠다. 더 많은 인원수를 허가받으려면 주민공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협회가 조직되어 있는 조용한 주택지이기에 불가능하리라 판단했다. 어떻게 시도해야 하나? 망설이며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추수감사절 연휴 바로 전날, 검사관(Inspector)이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걱정하던 대로 인원수가 정원을 넘었기에 지적(citation)을 받았다. 인원수를 줄여야 한다. 잘 적응해 다니고 있는 어린이 몇 명을 강제로 퇴원시켜야 하므로 앞이 캄캄했다. 사면이 막힌 깜깜한 공간에 갇힌 상태에서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침착하려 했다. 일을 시작하게 하신 분이 걸음을 인도해 이루게 해주리라고. 학부모에게 양해를 구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마음 놓고 많은 어린이를 양육하고 교육할 수 있는 더 넓은 장소가 필요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데.

 

  큰 계획을 안고 시작했는데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감사절 휴가 내내 '이 상황에서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라고 기도했다. 불평하지 말자. 감사할 조건을 찾기에 골몰했다.

내 능력 밖의 일로 길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임에도.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채 감사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그분의 능력을 믿을 뿐이었다.

 

  감사절이 지난 후, 미처 내가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길이 열렸다. 애너하임 지역에 큰 규모의 프리스쿨( Day Care Center)을 찾게 해 주셨다. 은퇴하는 백인 주인의 친절을 통해 순조롭게 인수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직 전능자가 주신 지혜와 은혜를 통해서 이루어진 결과였다.

 

  이듬해 19933월부터 정식 주 정부 인가를 받아 운영하는 기적을 맛보았다. 넓은 새 장소에서 많은 어린이가 마음껏 성장할 수 있었다.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큰 산을 넘어 형통한 대로를 준비해 주신 것이다. 어려움 가운데에서의 감사가 진정한 감사를 태어나게 했음을.

 

  받은 혜택에 보답하기 위해 운영시간을 전후로 한 시간씩 연장했다. 토요일에도 일하는 부모를 위해 한글과 예능 교실을 열었다. 엄마가 출근하며 내려준 어린이를 아침을 먹인 후 학교에 데려다주고, 방과 후 데리고 와 숙제지도까지 하는 Before, After School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결과 큰 규모의 다민족 학교로 성장하여 해마다 100명의 어린이를 교육하며 많은 졸업생을 배출했다. 작은 묘목이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하듯이. 자라온 환경과 언어, 음식, 문화가 다른 타민족 어린이를 불평이나 사고 없이 양육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3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나에겐 아찔한 체험으로 남아 있다. 살아있는 감사의 증거로 말이다.

 

  일을 내려놓을 시기가 되니 우리 부부 몸의 여러 기관이 닳아진 나사처럼 고장이 났다. 앞에 펼쳐진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제부터 녹슨 부품들을 윤활유를 치고 다시 맞추어 재가동하리라. 오히려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감사로 초점을 맞추면서. 기억 속에서 소중한 '감사'를 꺼내 반추해 본다.

 

 

 

 

11. 26.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