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뚜막에 걸린 주머니

                                                                                                                            이희숙

 

 

 

   내 어릴 적의 부엌 부뚜막 위에는 헝겊 주머니가 걸려있었다. 어머니는 쌀을 씻기 전, 쌀 분량의 1/10을 떼어 주머니에 담았다. 가족을 위해 기도하면서 정성을 기울였고 끼니마다 주머니 속에 쌀이 소복이 쌓여갔다.

 

  일요일에 교회 종소리가 울리면 어머니는 곱게 단장을 하셨다. 한 손에는 성경 찬송가, 다른 한 손엔 쌀 주머니가 들려있었다. 예배를 드리기 전 정성껏 그 주머니를 교회 제단에 봉헌하셨다. 쌀이 들어있는 헝겊 주머니는 '성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요사인 생소한 이름이 되었지만, 여인이 경제 능력이 없던 옛날에 아낙네가 십일조를 드렸던 방법이었다. 여자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밥을 지을 때마다 쌀을 몇 줌씩 모아 주일 제단에 바쳤다. 이제는 사라졌지만, 한국교회에서 소중하게 기억되는 물건중 하나이다.

 

  19689월 서울 관악구 난곡동 철거민촌에서 젊은 신학 대학생은 나무 십자가를 꽂고 찬송가를 불렀다. 찬송 소리를 듣고 몰려온 15명의 초등학교 어린이로 교회가 출발한 것이다. 시내에서 난민촌으로 밀려온 학생들은 다니던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젊은 전도사는 그들에게 야간학교를 열어 배움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학업을 계속할 수 있기에 많은 학생이 모였고 즐거운 활동의 장소가 되었다. 신앙을 통해 앞날을 개척하는 배움의 터전이 된 셈이다. 어느 날 연고가 없는 학생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교회에서 주관하여 장례를 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동네 어른이 교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교회 성장의 출발이라고 할까. 그 당시 주민들은 불도저로 밀어 놓은 황량한 벌판에 천막을 치고 아무런 시설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생활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신문지를 깔고 예배를 드렸지만, 날씨가 싸늘해지자 예배드릴 처소가 필요했다. 그때 젊은 전도사와 사모는 결혼반지를 팔고 그 돈을 헌금하여 두 필지 16평을 살 수 있었다. 1 성전을 마련한 교우들은 신앙을 통해 힘찬 삶을 걸으며 역동적인 기적을 이루어냈다. 그 후 세월이 가며 제2 성전, 3 성전, 4 성전의 완공과 더불어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다.

 

  교회 목사님은 사례비로 성미를 통해 식비를 충당하셨다. 사모님은 교인의 정성을 어루만지며 쌀을 씻었고 교우의 영, 육 건강을 위해 주님께 아뢰었다. 그리곤 알뜰하게 절약하여 성미를 남겼다. 모은 성미를 큰 자루에 따로 담아 보관했다.

 

  며칠 후, 사모님은 그 쌀자루를 머리에 이고 어디론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끼니도 해결하기 어려운 신학생의 집 부엌에 살그머니 내려놓았다. 그뿐 아니라 여러 가난한 가정을 차례로 방문하며 쌀자루를 놓고 왔다. 그 쌀은 어려운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었다. 사모님의 손길을 통해 구호미, 장학미로 쓰인 것이다. 성미는 귀하고 아름다운 쌀의 역할을 했다. 한 줌 한 줌의 쌀이 모여 교우의 어려움을 나누었다. 사랑을 나눈 성미 주머니이기에 의미가 컸다.

 

 

   창립 50주년을 맞이했다. 반세기 후, 홈 컴잉 데이(Home Coming Day)가 마련됐다. 예전의 그 어린이들이 흰 머리의 면류관을 쓴 채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증거되고 나누는 잔치 자리가 베풀어졌다.

 

  믿음으로 극복한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는 시간이었다. 많은 분의 간증이 쏟아졌다. "가난했던 그 시절, 난 사모님이 몰래 놓고 가신 그 성미를 먹고 자랐어요. 오늘의 나를 있게 했지요. 저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집에 쌀이 떨어질 때쯤 되면 사모님은 어떻게 아셨는지 성미 자루를 이고 오셨어요."

그 성미를 먹고 자란 어린이 중에서 많은 주의 일꾼이 배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쌀 '()' 대신 아름다운 '()'로 써야 함이 좋을 듯싶다. 성스럽고 아름다운 쌀이다. 나눔은 기적을 낳았다. 부뚜막에 걸렸던 주머니는 내 마음에 감사의 증표로 새겨져 있다.

 

 11. 15.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