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따뜻한 이불

 

                                                                                                                       이희숙

 

 

  멀리 산에서 불어오는 눈바람 탓인가. 이른 아침에 차 문을 여는 손끝이 시리다. 유리창에 낀 성에가 두꺼워 히터를 튼 채 기다린다. 따뜻한 기온이 차 안에 퍼진다. 뉴스를 듣는다. 지구 곳곳에서 혹한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마비되는 지역이 많다고 한다. 추운 날씨로 잔디에는 마치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얗게 서리가 덮였다. 고가다리 밑에 한 노숙자가 이불을 둘둘 말고 웅크린 채 잠들었다. 낡은 담요, , 냄비 등 살림살이를 쇼핑 카트에 싣고 이동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민 초기,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서 처음 노숙자를 보았을 때 흠칫 놀랐다. 차에 다가와 손을 내미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유리창을 올리고 말았는데 세월이 지나며 이제는 그들에게 거부반응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겨울만 되면 추운 다른 주에서 많은 노숙자가 몰려온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예 길거리에 텐트를 친 모습이 날로 늘어나, 이젠 옆 공원에서 촌락을 이루며 삶의 터전을 마련하려 애쓰는 그들의 모습에 익숙해졌다.

 

 

  지난 추수감사절에 이웃 돌아보기 행사를 했다. 젊은이들이 모여 터키를 굽고 음식과 생활필수품을 준비했다. 따뜻한 옷과 이불도 봉투에 담았다. 팀을 나누어 직접 노숙자가 거주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나누어 주고, 이웃 사랑 나눔을 실천하고자 했다. 노숙자들이 모여서 텐트촌을 형성하고 있는 공원으로 갔다.

 

  지붕이 있는 버스 정류장도 그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잠시이지만 그들과 대화할 기회도 만들어 많은 원인과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마약을 했다는 20대 청년을 만났다.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는 우리에게 그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주기를 부탁했다. “우리 엄마에게 내가 잘 지내고 있다고 전화해 주세요.”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전쟁에 참여했던 재향군인의 이야기도 들었다. 참전 후에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 부인과 이혼 후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어떤 중년 아저씨는 우리가 건네는 물건도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골라서 받았다. 그는 망원경을 들고 다니며 하늘에 나는 새를 관찰했다. 아마도 가정을 떠난 자유로운 영혼인가 싶었다. 앳된 얼굴의 십 대 소녀는 돈을 달라고 했다. 집으로 데려다주겠다는 우리의 말을 거절했다. 무슨 사연인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마약이나 특별한 원인이 아니어도, 치솟는 주거지 비용으로 한 번 터전을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삼 남매를 둔 부부는 아무리 열심히 일하여도 렌트비를 감당하지 못해 거리로 내몰렸다고 한다. 깡통이나 재활용품을 모아 돈을 마련하는 성실하고 재활 의지가 있는 사람도 거주할 곳을 잃으면 초래되는 현상이다. 노숙자 무리 가운데에서 상당수의 한인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도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을 다른 시선으로 보아야 함을 깨닫는다.

 

  시 당국은 급증하는 그들을 위한 노숙자 셸터가 부족해 수용 능력에 한계가 있고, 게다가 쉘터 설립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노숙자를 위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치안 관리와 약물중독 치료 등 재활 프로그램이 우선되어야 한다.”라고 언론에서는 목소리를 높인다. 대책이 시급함을 피부로 절실히 느끼는 계절이다. 그것은 정계에서 일하는 분만이 해결하는 내 영역 밖의 일인가를 생각한다.

 

  이웃의 한 대학생은 ‘School on wheel”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노숙자 어린이를 위해 이동 버스 안에서 가르치며 그들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준다. 노숙자를 돕는 기부의 손길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 준다.

 

  아침에 출근해 보니 내가 일하는 어린이학교 앞 거리에 여기저기 지저분한 물건이 널려졌다. 옷가지, 먹던 음식, 이불, 가방 등. 옆 공원에서 사는 노숙자가 버리고 간 물건이다. 나는 오늘도 그 쓰레기를 치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가장 따뜻한 이불은 무엇일까?

 

 

   

 

 

2. 23.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