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암은 아닌 같습니다.' 밝은 목소리로 들어 의사의 입에서 나온 말에 몸을 앞으로 닥아 고쳐 앉으며 정말이냐고 반문을 했다.

지난 2주 동안 천당과 지옥을 번이나 다녀 왔을까. 자리 누우면 떠올라 꼬리를 물고 나를 끌어가는 생각은 기상 알람이 울리도록 멈추지 않았다. 생의 가장 오랜 기억에서부터 시작하여 살아온 순간마다 마치 화인처럼 새겨진 삶의 모습이 지나간. 그것이 행복한 추억이었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아픈 일이었든 상관 없다. 모두가 소중해서 버릴 없는 시간이라 여겨졌다.

 

건강 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타고 통뼈에다가 가리는 음식은 있지만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열심히 먹는다. 싫은 음식은 아예 제쳐놓고 살아왔다. 입맛이 없다고 투정을 하는 사람들을 유난히 싫어했다. 아무리 먹는 보약이라지만 몸에 좋다는 음식이면 힘들어도 참고 열심히 먹는 사람이 이상해 보였다.

운동도 꾸준히 하는 편이다. 메디케어를 받게 되면서부터 무료 체육관 사용의 혜택이 있다. 가까운 곳에 등록을 하고 수시로 드나들며 체력 키우기에 노력한다.

65세가 되던 새해 , 굳은 결심을 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체력 관리에 무심하다 보니 체중이 모르게 늘어났다. 운동과 다이어트, 쉽지 않은 목표를 세우고 2 넘는 꾸준한 노력으로 10 전의 체중을 되찾고 체력도 강화되었음을 자부한다.

 

이번에는 주치의가 권하는대로 건강 검진을 받기로 했다. 기본적인 혈액 검사를 비롯하여 내부 기관을 살피는 여러가지 점검을 하던 중 산부인과 진료가 있었다.

이제 노년에 접어든 때 여자의 기능이 쇠퇴한 것은 당연한데 이상이 생겼다니 당황스러웠다. 추가로 필요한 검사가 진행되고 결국 드러난 것은 난소에 자라난 엄청난 크기의 혹이었다. 암세포인지 확인도 필요할 뿐 아니라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다는 의사의 말이 귓전을 때렸다. 짧은 시간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가족과 친구들, 세상에서 마음을 나누던 많은 사람의 얼굴, 목소리, 그 사랑까지.

 

선인장의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난다. 온몸을 가시로 무장한 채 그 누구의 접근이라도  단호히 거부할 듯 고고한 머리 위에다 지극히 가녀린 꽃잎을 매달고 있다. 어쩌면 너무도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감추기 위해 더욱 날카로운 가시를 키우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랬다. 이제껏 끌어 온 삶의 모양이 행여 타인의 눈에 약해 보일까, 초라한 모습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으리라. 사실 어느 한 사람도 남의 인생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다. 괜한 경쟁심의 발동으로 나 자신은 물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올 여름은 조금 힘겨울 듯 하다. 병원에 가기를 유난히 싫어하는 내게 피할 수 없는 시간이 예고되어 있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

수술을 담당할 의사와의 약속이 정해졌다. 그 손에 의탁하며 지시에 잘 따르는 일 뿐, 모든 것은 내 능력 밖이다. 그 다음에 마주할 일이 또 무엇인지도 난 알 수 없다.

생명을 부여받았을 때부터 내 선택이 아니었듯 창조주 하느님께 모두를 맡겨드린다.

산다는 것은 오늘 하루 행복의 몫을 더하는 여정이 아닐까. 기쁨과 평화 속에 머무르며 서로 사랑하는 삶의 길 위에 넘치는 하느님의 축복이 있음을 알기에 두려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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