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다녀온 후 무거운 마음

 

 

 

최숙희

 

 

혼자 공항버스를 타고 간다는데도 엄마는 이사한 새 집을 내가 못 찾을까 염려하며 부득부득 공항에 나와 계셨다. 월세를 받아 노후대비를 하려고 마련한 아파트가 8개월 이상 세가 안 나가자 부득불 이사를 하셨다 했다. 엄마는 요즘 내가 실천하려는 미니멀리즘을 이미 이루신듯하다. 꼭 필요한 것만 남겨 집이 모델하우스같이 깔끔하다. 거실에서 남산타워와 고층건물이 보이는 야경이 좋다. 남산타워는 밤에 초록색으로 빛났는데, 초록은 미세먼지농도 '보통'을 의미한단다. 안방에는 새로 꾸민 이부자리 두 채가 나란히 깔려있다. 오랜만에 엄마랑 단둘이 자게 되었다. 누워보니 사각거리는 느낌이 상쾌하다. 결혼 후 30년이 지났지만 친정은 역시 편하다.

 

 

밤에 코를 심하게 고는 아버지 때문에 부모님은 각방을 쓰신 지 오래다. 아버지 방에 들어가 보았다. 책장은 아버지가 오랜기간 관여한 동창회의 책자와  신간 베스트셀러로 빼곡하다. 20년 전 퇴직한 후 줄곧 증권사를 드나드는 아버지는 집에 오는 길에 광화문 교보서점에 들러 책을 사 오신다. 물건 버리는걸 좋아하는 엄마는 같은 책이 여럿인 것도 있다고 불평이다. 방에서 노인 냄새가 난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다. 어느틈에 날라 들어와 윙윙거리는 왕파리를 증권사 잡지로 후려쳐 명중시키는 엄마, 84세 할머니의 민첩성 이라니.

 

 

3년 만에 만난 아버지는 많이 야위셨다. 팍 쪼그라들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15년 전부터 보청기를 썼으나 적응을 못해 글씨로 소통해왔다. 가족 간의 대화는 차츰 줄고 증권사를 나가는 시간을 제외하곤 하루종일 TV를 크게 틀어놓고 계신다. 내가 서울에 오면 항상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내 귀가 고장 나서 미안해라고 말씀 하셨다. 내 두 손을 잡고는 빳빳한 5만원 짜리 신권으로 100만원을 채운 봉투를 주셨는데, 이번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아무 말도 없다. 나를 못 알아보는지 아는 체도 않고 봉투도 안주시니 아버지가 정상이 아니다 싶었다. 매달 주식을  팔아 생활비를 집에 가져오신다기에 “우리 아버지 숫자에 밝으시니 치매는 안 걸리겠네했는데, 고립무원의 세계에서 홀로 외로운 노년을 보내는 아버지가 가엽고 쓸쓸하다.

 

 

동생이랑 부모님을 모시고 강릉에 갔다. 양양고속도로를 타니 2시간 남짓밖에 안걸린다.  시마크호텔 총지배인 고교동창이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해줘서 사방이 바다가 보이는 호사스러운 방이다. 머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사흘동안 방에서 동해 일출과 일몰을 보았다. 대관령 양떼목장, 오죽헌, 낙산사를 가보았다. 수십 년 전 부모님이 어린 우리들을 데리고 가족여행을 왔던 코스다. 부모님 연로하시니 이런 기회가 앞으로 또 있을 수 있을까.

 

 

내가 LA로 돌아온 후 아버지가 넘어져 응급실로 가서 CT를 찍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 골절은 없으나 다리에 힘이 없으니 앞으로 혼자 외출이 안 되겠다. 증권사 나가는 일 말고는 당신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는 분이다. 자존심 때문인지 지팡이도 없이 고집을 부리니 서울의 가족들 모두 비상이 걸렸다. 몰래 집을 나가 증권사를 가실까 걱정인 것이다. 멀리 산다는 핑계로 아무 도움이 못되는 나는 마음이 무겁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4/11/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