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2015

어젯밤 나는 1시간 반이면 2살이 되는 어린 천사와 함께 일을 했다. 태어나면서 선천적으로 신장이 좋지 않아 세상에 내려온 짧은 기간 동안 엄마의 따뜻한 품속보다는 차가운 병원의 침상 속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던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오랜 병치레에 지친 짜증스럽고 투정이 많을 이 아이와의 만남이 달갑지 않았다. 지치고 창백한 모습으로 엄마의 품속에서 나를 만나면 그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던 나 같은 모습의 많은 사람을 떠올리며 첫마디 인사는커녕 만지지도 못하게 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찾았던 아이는 뜻밖으로 찾아온 많은 손님과 즐겁게 지내느라 한동안 나의 방문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이의 침대 위 장난 감차 속에는 아기곰, 강아지, 고양이, 토끼, 아기다람쥐 그 외에도 이름 모르는 아기동물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아이는 불편한 몸으로 그 많은 손님을 즐겁게 해주려고 자신의 소꿉놀이 바구니에서 이것저것 꺼내 케이크와 차를 대접하면서 잔잔한 목소리로 손님들 하나하나에 다정한 인사말을 건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와 친구들이 많구나. 다 함께 어디 가려고? 친구들 안전벨트는 다하고 있는 건가?” 하고 묻자 “피크닉카니까 그래” 하면서 먹을 것으로 가득 채워진 트렁크를 내게 열어 보여 주었다. 그러면서 낯선 손님으로 찾아온 나를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다정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전혀 어색하지 않게 맞아 주었다. 아이에게 내 소개를 했더니 아이는 자신의 친구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내게 소개해 주었다. 남자 친구는 안 왔느냐고 물었더니 잔잔한 미소를 건네며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만 노는 거야” 하면서 여전히 친구들을 대접하기에 바빴다. 

소아 수술실이 있는 3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대기실을 나오면서 “우리 노래할까?” 했더니, “무슨 노래?” 하면서 뜻밖이라는 듯이 내게 되물었다. 내가 “ happy birthday~” 하고 시작하자, 이제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쑥스러운듯 쓱 웃어 보이더니 조그마한 입으로 함께 따라 부르는 모습은 내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수술실앞에 까지 와서 엄마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아이들과 수술실에 들어가야 할 때면 늘 치러야 하는 가장 어려운 의식이 떠올라 다시 마음이 어두워졌다. “자, 이제 우리 엄마와 잠시 헤어져서 이 방에 들어가 좀 자는 게 어떨까?” 했더니 아이는 엄마도 들어가 함께 자면 안 되냐고 물었다. 엄마는 우리처럼 파자마를 입지 않아서 안 된다고 했더니 그럼 내 파자마를 벗어 주면 안되냐고 했다. 엄마에게 내 파자마를 벗어 주면 속옷만 입어야 하는데 학교 갈 때 속옷만 입고 가면 안 되듯이 일을 할 때는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더니 아이는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와 꼭 잡았던 손을 놓았다. 

문득 잠들기 전에 아이는 “가끔 남자아이들과 함께 놀 때도 있어.”라고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좀 전에 내게 마음에도 없었던 거짓말을 한 것이 못내 걸렸던 것 같았다. 수술하는 동안 아이의 목에서 혈관을 찾느라 미처 생각지 못한 예쁜 헤어벤드에 피가 묻어 지워보려고 했지만어려웠다. 아이가 깨어나서 피 묻은 헤어벤드를 보고 놀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지만, 그것도 아이는 너그럽게 이해해 줄 것 같았다.

이제 수술은 끝났지만, 신장이식을 받을 때까지 아이는 또다시 몇 번의 수술을 거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는 걱정이 되지 않았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늘 부정적인 결과를 먼저 생각하고 걱정이 많았던 내게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아픔과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인 일들과 감사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찾아낼 수 있는 아름다운 힘을 가르쳐준 천사였다. 

그날도 여전히 정신없이 바쁘고 힘든 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술실 복도를 걸으면서 창밖으로 떠오르는 햇살이 왜 그렇게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