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따라 살기
모든 게 변한다. 시간이 움직이듯 세상 만물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없다.
우리 눈에는 고정되어 있어 보이는 물체도 지구가 돌고있는 한 어느 순간도 같은 자리라 볼 수 없겠다. 자연의 이치가 변화하는 것일진대 사람이 만들고 공유하는 것들이 그 모양과 질, 쓰임새가 나날이
발전되는 역사의 반복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집 전화가 온 동네 사람들의 연락처가 되어 급한 일을 전해주곤 했다. 그 후로 우리나라 가정의 전화 보급이 보편화 되었을 무렵 발명된 무선 전화기는 획기적이었다. 그 때 나는 만약 전화를 각 사람이 기지고 있어 어느 곳에 있든 언제라도 연결이
된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했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전화와 사람이 일체가 된 시대를 살고
있다. 더욱 똑똑해진 전화로 못할 일이 없는 세상이다.
대학시절 사진 속의 패션은 또 어떤가. 나름대로 뒤떨어지지 않도록 골라 입었다고
했지만 지금 보니 촌스럽기 그지없다. 머리 모양도, 신발도,
가방 디자인도 요즈음과 거리가 멀다.
자동차에 관한 기사 내용에서 재미있는 글귀를 보았다. 새로운 자동차 모델을 헤드
라이트가 앞트임, 뒤트임 한 것이라 설명하고 있었다. 성형외과에서 한국인의
가늘고 기다란 눈의 앞과 꼬리부분을 절개하여 서양인의 눈처럼 크게 만드는 게 대유행이란다. 그래서인지 온통
한국인의 눈 모양이 이젠 더이상 찢어진 듯 하지않고 시원스럽게 왕방울 같아 보인다. 거기에 쌍거풀까지 곁들이니
동양인의 특색은 찾아볼 수가 없다.
유행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남보다 앞서 가는 일은 힘들지만 그래도 무리에
끼어 어울려 가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나 역시 겉모습이나 생활 속에서 사회가 만들어가는 보편적인 모양새를 따랐다.
때론 그것이 내 분수에 맞지 않아 힘들어 하기도 했다. 아마도 한국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지금도 이웃을 의식하는 풍조에 발맞추기 위해 남편과도 많은 갈등을 겪었을른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미국
사회는 개인에 대해 한국 만큼 관심이 없을 뿐더러 전혀 다른 문화가 공존하기에 훨씬 자유로운 나만의 생활패턴을 유지한다.
모든 일에 의욕이 예전같지 않다. 습관처럼 굳어진 일에 익숙한 채 새로운 경험을
하기가 두렵기마저 하다.'끝'이란 말도 없이 마감이
되어버린 젊음인가.
유행을 따라가야 잘 사는 것을 아니리라. 상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기에 내가 가진 지식이나 능력은 너무도 미약하다. 갖고 있는 전화 기능의 극히 일부 만을 이용할 수 있고 컴퓨터 사용도 아주 단순한 수준이다. 최소한의 변화에 적응할 힘이라도 키우려면 공부할 일이다.
누군가가 한 말이 기억난다. 나이가 들면 지나간 일을 자꾸 떠올리지 말 것, 이미 일어난 일을 후회하지 말 것,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아쉬워 하지 말 것.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재의 내 모습을 바로 보련다. 욕심 내지 않고 유행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그것이 이 세상에 머물렀다 떠나는 그날까지 가져야 할 충실한 삶의 태도라 깨닫는다. 젊은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생활방식을 궁금해 하며 그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리라. 어차피 유행도 흘러가는 것, 내 삶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