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네임
결혼 전의 성이 무어냐는 물음에 'Kim' 이라 답을 했다. 현재의 성을 물은 게 아니라며 천천히 다시 묻는다.
내 답은 한결같다. 어떻게 결혼 전과 후의 성씨가 같으냐며 고개를 젓는다.
지금은 한국을 모르는 미국인이 없을만큼 우리 나라가 강해졌을 뿐 아니라 한국인의 숫자도 엄청나니 그럴 일이 없으리라.
1980년 뉴욕에 도착 후 소셜 번호를 받으러 방문한 오피스의 직원은 내게 묻고 또 묻기를 반복했다.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한국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 통했는지 그때 받은 소셜 넘버로 지금껏 살고 있다.
'김'은 제일 흔한 한국인 성씨다. 물론 본이
다르기에 혼인할 때 문제는 없었다. 한 친구는 동성동본끼리 결혼할 수 없던 법규에 걸려 혼인신고는 못한 채 아이의 부모로만 등록하여
살았다. 그것도 한국에서 제일 많다는 김해 김씨 성이었으니 많이 억울하고 불편해 했다. 이후 법이 바뀌어 현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역사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낳은 근친상간의
부정적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사촌과의 결혼이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다고 한다.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 소위 훼밀리 네임이 되어 온 가족이 같은 성씨를 갖는 게 미국의 문화다. 나는 뒤집으나 엎으나 그대로 Kim이라니 소셜 오피스 직원이 이해하지 못할 수 밖에.
물론 원하지 않으면 결혼 전의 성씨를 지켜도 되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 꽤 있다. 아니면 자기 성씨에 남편의 것을 덧붙이는 경우도 보았다.
'성을 간다'는 말이 있다. 보통은 어떤 주장에
대해 백 퍼센트 의심이 없다는 맹세를 대신하는 말로 쓰인다. 우리의 사고방식으로 성씨를 바꾼다는 일은 자기의 출생 성분을 완전히 달리 한다는 것으로 받아 들여져
더이상 집안에 소속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리라. 그러니 얼마나 엄청난 각오이며 확신에 가득찬 선포인가.
다만 자기의 주장이 허사가 된 후 정말로 성을 갈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남편과 사별한 후 10년이 지났다. 주변에서 일찌기 재혼에 대한 권유를 하는 사람도 많았고 말리는
이들도 있었다. 한동안은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왔다. 이제
65세를 넘어 독거노인 시니어 범주에 속한 요즈음 외롭다는 실감을 가끔 하게 된다. 밖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에는 힘이 솟는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서면 온 집안에 서려있는
고요가 차가운 기운으로 덮쳐온다. 알람을 켜고 거실의 불을 밝혀 놓은 채 한밤을 지내는 일이 많다.
게다가 밖의 작은 소리에 무서움이 몰려오면 이렇게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싫어진다.
친구의 소개로 싱글 남자분을 만났다. 우스운 일은 내 모습은 자각하지 못한 채 마주한 상대방이 왜 그리도 나이 든 사람인지를 스스로 궁금해 하고 있었다. 얼마나 어색한지는 대학 시절 뽑기로 정해진 파트너와 대화를 시작할 때보다 훨씬 더했다.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그 위로 겹쳐오는 남편의 잔영 때문에 집중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그만 하자,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앞에 계신 분께도 예의가 아니었다. 어쩌면 나와 꼭같은 느낌일 수도 있겠다.
성을 바꾸는 일을
포기했다. 세상에는
한 번도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딸도 둘이나 낳았고 보기만 해도 마음이 들뜨는 손자도
있으니 외로워 하지 않기로 작정한다.
내 라스트 네임은 여전히 ‘Ki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