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품 안에서 / 정조앤
모험을 좋아하는 하이킹 클럽 회원이 뭉쳤다. 데스밸리 국립공원으로 2박 3일 일정으로 캠핑을 왔다. 여러 번 이곳을 방문하였지만 이번 여행은 4x4 SUV 차량으로 비포장도로를 이동하기로 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지형에 모래언덕과 소금 바다가 있고, 뜨겁고 낮은 배드워터 분지(Badwater Basin)와 최고봉인 해발 1,049피트(3,368m) 텔리스코프 픽(Telescope Peak)까지 경사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생각보다 푸근하고 아름다운 면이 많다. 거칠고 음산한 행성의 지표면 같은 계곡과 구릉 너머로 평화롭고도 아늑한 어머니의 품 같은 언덕과 지평선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1849년 11월 골드러시 때, 금을 쫓아 캘리포니아로 가던 100여 명의 사람이 이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한 달 동안 방향을 잃고 헤매다 한 명의 사망자를 내며 이곳을 벗어났다. 그때 사람들이 "Good bye death valley!"라고 외쳤단다. 그 후 죽음의 골짜기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낯익은 풍경을 뒤로하고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회색빛으로 물든 신비의 세계로 들어섰다. 데스밸리에서도 가장 외진 곳인 레이스트랙은 약 2시간이 소요되는 28마일의 오토로드 트레일이다.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 폭이 좁은 길이다. 반대 방향에서 오는 차를 위해서 비탈길 언덕에 기우뚱하게 차를 세워야 한다. 뿌옇게 날리는 모래바람에 앞뒤 차가 겨우 보일 정도다. 덜커덩거리는 차 안에서 머리는 천정에 받히고 엉덩이는 좌석에서 튀어 오르기를 얼마나 했던가. 그 와중에서도 신바람에 깔깔거리며 웃었다. 지프 랭글러(Jeep Wrangler)를 타고 가는 젊은이들이 부럽다. 그들은 오프로드 타이어에 공기를 적당히 빼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잘도 간다. 잠깐 그 광경에 반해서 지프 랭글러를 살까 하는 유혹에 빠졌다.
삼거리에 다다랐다. 티케틀 정션(Teakettle Junction)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언제부터였을까. 방문객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주전자를 매달아 놓기 시작했단다. 각양각색의 주전자들이 쇠줄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거친 모래바람이 분다 해도 날아갈 염려는 없겠다. 하지만 주전자를 가져가지 마시라는 무언의 메시지로 들린다. 티케틀 정션은 오고 가는 방문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는 명물이 된 셈이다. 한글 이름이 쓰인 주전자를 보니 동족을 만난 듯 반가웠다. 미리 알았더라면 한국 상표가 달린 노란 양은 주전자를 가져왔으면 하고 아쉬워했다.
큰 바윗돌이 서서히 움직인다는 레이스트랙 플라야(Racetrack Playa)에 도착했다. 광활하게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곳에 비가 내리면 표면 위로 약간의 물이 고이고, 물이 증발하면서 부드러운 흙이 된단다. 흙이 마르고 쪼그라들면서 지표면에 금이 가게 되어 다각형의 입자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 문양 위로 수백 파운드가 나가는 바윗덩이들이 자국(Track)을 내면서 돌아다니고 있다니 불가사의한 일이 아닌가. 어떤 것은 거의 일직선으로 3,000피트 이상을 뻗어 나갔다. 선명하게 길을 만들어낸 여러 형태의 자국들을 보는 순간 탄성들이 쏟아졌다. 일행 중에 누군가가 말했다. 10여 년 전에는 이곳에 바윗돌이 수없이 많았는데 사라진 것 같다고. 그 말을 듣고 보니 자국은 분명히 있는데 빈자리가 셀 수 없이 많다. 몇 사람이 들어도 꿈쩍하지 않을 바윗돌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슬쩍 가져갔을까. 그 또한 mystery다.
몇 년 전에 바윗덩어리가 스스로 움직이면서 자국을 낼 수 있는 것일까 하고 과학자들이 연구했단다. 160개의 바윗돌에 이름을 하나씩 붙여 GPS 장치로 추적을 해 보았다는 것이다. 밤에 내린 비가 얼었다가 해가 뜨면서 녹을 때, 마른 땅이 진흙이 되면서 돌이 미끄러워지고, 이때 바람이 불면 돌이 분당 약 4.6m 속도로 매우 천천히 움직이는 걸 밝혔다고 한다.
신비스러운 일들이 과학자에 의해서 계속 파 헤쳐지고 있지만, 아직도 우주의 비밀은 무한하다. 수수께끼로 우리 앞에 펼쳐진 자연은 묵묵히 말 많은 인간들을 응시하고 있다. 너희는 무엇을 보았으며 어떤 깨달음을 얻었느냐는 물음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비밀의 통로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모험을 즐기련다. 대자연의 품은 넓고도 넓다.
데스밸리를 몇 번을 갔어도 이런 곳은 전혀 금시초문인데요.
우리는 얼마나 판에 박힌 여행을 하고 다녔나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드네요.
실감나는 묘사, 세세한 설명.
데스밸리 여행기 치고 최고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