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여행

                                                                                                         

유난히도 무덥고 길었던 지난 여름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 물러설 때를 아는 모양입니다. 무성하던 나무에 매달려 있던 잎사귀들은 하나 둘 초록 위에 노란 색, 빨간 색의 덧옷을 준비하느라 힘겨워 보입니다. 마음의 더듬이를 곧추세우고 가을을 찾아 떠나봅니다.

우리 모두는 알 수 없는 땅 위에 선택의 기회마저 얻지 못한 채 씨앗을 싹틔워 삶을 출발했지요.


봄의 햇빛은 따사롭고 새싹은 마음껏 에너지를 흡입하며 희망을 키웠구요. 작은 꽃을 피우며 이웃한 나와는 다른 색깔, 다른 종류의 꽃들과 나란히 향기를 지어내기도 했습니다. 서로가 각자의 특색을 뽐내며 때로는 키자랑도 하며 세상을 배워갔습니다. 그때가 좋았습니다.


여름날은 뜨거웠습니다. 한껏 성장을 이루고 세상을 향한 꿈을 펴기 위해 열정을 태우던 시절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며 사랑을 하고 가족을 만들고 때때로 보람과 행복 안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강렬한 여름 태양 만큼이나 치열한 삶터에서 경쟁하느라 고통도 견뎌냈습니다. 절정에 이른 꽃송이는 만개하고 잎은 가지가 휘어지도록 무성하게 얽힐 무렵 작고 푸른 열매를 매달기 시작하였죠. 나무의 위용이 당당해 보였습니다.


산산한 바람 속 마른 잎이 날리며 웅성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열매는 커지고 단맛을 가득 품어 내어줍니다. 분주함이 멈추고 차분히 내려앉는 가을숲이 외롭습니다. 어떤이는 이 계절이 풍요롭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문득 돌아보니 곁을 지키던 친구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때쯤 깨닫게 되는 나의 존재.                                                                                             

인생의 가을이 지나면 동면에 접어들 때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부지런히 삶의 모양을 새롭게 다듬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어쩌면 삶의 가을은 제일 행복한 계절인지도 모릅니다. 뒤이어 찾아올 휴식을 기다리며 수고한 기쁨을 맘껏 누리면 되는 거죠.


한바퀴 마음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모두가 일정한 시간을 살아낸 후 다다르게 되는 황혼의 오솔길로 접어듭니다. 가장 한가로운 시절, 하지만 마음이 그리 평안하지만은 않은 이 느낌은 무슨 일입니까. 결코 끝이라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삶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쉼없이 우리를 움직이며 나아가도록 찾아오는 까닭입니다.

이제 남은 삶을 채워나갈 방법을 고민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