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거리에 가을이 내려와 있다. 늘그렇듯 아침이면 한 블럭 떨어진 딸네 집으로 향한다. 손자 녀석의 등교를 책임지고 있어 늦지 않도록 문앞에 대기한다. 이보다 더 충실한 운전기사가 어디 있을까. 그 뿐인가. 행여 아침으로 도넛이나 맥도날드의 아침 메뉴를 원할 때면 그 식사 제공도 내 몫이다. 나의 하루 시작의 마음 설레는 숙제가 되었다. 하나 뿐인 손자를 독차지 하고 40여 분이 걸리는 학교까지 가는 동안 실컷 볼 수 있으니 기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는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손자는 원래 말이 없는 편인데다 이제 틴에이저에 접어드는 때가 되니 더욱 조용해진 듯 하다. 가끔씩 묻는 말에 짧은 대답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등굣길 내내 FM클래식 방송에서 흐르는 옅은 선율 속에서 차분히 책 읽기에 열중이다. 할머니가 그 시간을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하게 느끼는지 짐작도 못하리라. 아이는 내게 더 없이 큰 마지막 선물이다. 백 밀러를 통해 운전 사이사이 내리깔고 있는 녀석의 얼굴을 훔쳐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의 하루를 생각한다. 매일처럼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을 오늘은 어떻게 나누어 무엇으로 채울까. 일정표를 들여다 본다. 누구와 만날 약속은 몇 시인가, 어디를 방문해야 할 곳은 없는가, 혹은 오늘이 누군가의 생일이나 기억해야 할 날은 아닌가. 요즈음 들어 부쩍 믿을 수 없게 된 내 기억력이다.
차를 집에 세워 두고 길로 나선다. 외출할 시간까지 여유롭다. 동네를 한 바퀴 걸으며 집집마다 뜰에 핀 각양각색의 꽃들과 눈인사를 나눈다. 사계절 꽃세상인 캘리포니아에 살고있는 축복이라니. 어쩌면 그리도 평화로운지 울컥 가슴 속 무언지 모를 그리움에 눈물마저 고인다. 짧은 순간 내가 살아 온 기억이 마음을 훑고 지나는 듯 형상이 스친다. 지금 내가 살아있음을 실감하면서 감사의 기도을 올린다.
혼자 먹는 밥은 재미가 없다. 요즈음은 젋은이들도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 ‘혼밥’ 이라는 유행어가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식탁에 홀로 앉아 커다란 머그에 내린 커피를 홀짝홀짝 마신다. 창밖으로 보이는 자동차와 사람들, 그리고 먼 산길 따라 늘어선 나무, 그 위에 머물고 있는 구름과 끝없이 펼쳐진 하늘. 이들이 내 식탁의 친구가 된다. 모두가 아무 걱정 없이 하루를 시작하는데 이유 모르게 내 마음엔 파문이 인다.
‘오늘도 무사히’. 어린 시절 보았던 버스 기사 앞면에 기도하는 어린 천사의 그림과 함께 붙어 있던 문구다. 나 역시 사고 없는 하루를 기원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집을 나서며 문단속과 불조심을 몇 번이고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오래 전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시절, 여러 차례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조심하게 된다. 내가 염려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 내게 그대로 투영되어 있음에 때때로 놀라곤 한다.
은퇴한 나이에 뭐 그리 중한 사무가 있으랴.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만나는 것처럼 즐거운 일은 없다. 어떤 배경으로 맺은 관계든 말이 통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값진 인연인가. 어른이 되어 그것도 미국땅에서 알게 된 좋은 사람들이 정말 귀하게 느껴진다. 때론 신기한 생각도 든다. 어찌 이 넓은 세상에서 그 시간 그곳의 정해진 만남이 과연 우연일까. 저장되어 있는 전화번호의 이름을 하나하나 낮게 불러본다.
어느 누구도 잊어서는 안될 사람.하루가 저문다. 서쪽 하늘로 지는 해처럼 오늘의
기억은 산을 넘는다. 역시 혼자만의 저녁 식탁이지만 아침보다는 훨씬 풍성해진 마음에 덜 쓸쓸한 기분이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에서 ‘내일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을 보았다. 깊이 동감한다. 오늘 또한 언제까지
내 것이 되어 줄른지 알 수 없으니 행복하자고 다짐한다. 다시 떠오르는 태양이 나를 깨우기까지 평화와 안식을
기도한다. 오늘 하루와 작별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