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된 기회

                                                                                                               이희숙

 

 

  운전면허 실기 시험을 2년마다 본다. 매번 정밀 시력검사를 받아 결과를 제출했다. 올해도 안과를 예약하고 보험회사의 허락을 기다렸다. 세 번의 병원 방문으로 겨우 결과 기록을 받았다. DMV에서는 무려 세 시간을 기다려 접수하고, 운전 실기시험을 치르는 날에는 두 시간을 기다려 겨우 내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시험관에게 서류를 내밀고 나서야 병원에서 날짜를 잘 못 적는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다니. 지금까지의 수고가 무효로 되고 다시 절차를 밟아야 했다.

 

  며칠 후 긴 줄 속에서 긴장하며 기다려서 마침내 Vision Drive Test 실기시험을 치렀다. 약한 시력으로 인한 운전의 위험성을 시험해보는 까다로운 심사였다. 불합격이었다. 30년 동안 해 온 운전 경력임에도 쓴맛을 봤다. 그뿐인가 임시면허증을 주며 다음 시험은 생소한 웨스트민스터 시로 가라고 했다. 주어진 상황이 실망스러웠다. 가슴을 졸이고 인내해야 하는 시간이 힘들었다. 운전대를 내려놓고 싶었지만, 마음을 위로하며 지난날 겪었던 아픔을 되돌아봤다.

 

  20024, 오른쪽 눈동자의 아랫부분에 검은 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선은 점점 위로 올라갔다. 빛이 통과하지 않는 검은 철판이 눈을 가린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다음날엔 1/4이 까맣게 보이지 않았다. 실명은 시간문제라는 생각에 겁이 났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엄청난 사실에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 놀란 마음을 달래며 가까운 안과를 찾았다. 검사 후 의사는 병명과 치료 방법을 모른다고 했다. 내 손에 주어진 것은 눈에 좋다는 비타민뿐이었다. 또 왼쪽 머리에 통증을 느껴 신경내과를 찾아 스테로이드 계통의 약을 처방받았다.

 

  실력이 있는 의사를 수소문하면서, 예약도 못 한 채 다급하게 UCLA 응급처치실로 들어갔다. 병원에서 선처해 준 우선순위로 새벽에 달려가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며칠 후 최고 권위 있는 병원에서 받은 모든 검사의 결과는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이었다. 그러나 원인을 모르고 치료할 수 없다고 했다. 의학으로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점자를 배워야겠다는 각오를 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딸의 손을 의지해 병원을 나섰다. 절박한 눈물의 기도로 매달렸다. 약 복용과 침 치료도 받았다. 무엇에 의한 어떤 효과였을까?

 

  두 달 후 검은 철판이 군데군데 얇게 벗겨지기 시작했다. 깜깜한 터널 끝에 환한 빛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치료의 능력이 나에게 빛을 선사했다. 기뻐하는 마음이 채 식기도 전, 일 년 후 왼쪽 눈에도 똑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같은 치료를 시도했지만, 시신경이 마비되었다. 어렴풋한 형체만 보일 뿐 큰 글자도 보이지 않았다. 생활하기에 불편은 없지만, 왼쪽 시력이 나오지 않았다.

 

  그 결과로 2년마다 운전면허 실기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신체적인 불편함을 통해 성숙한 깨달음을 갖는다. 자신과 남을 긍휼히 여기는 자세를 배운 게 아닐는지. 낮은 곳에서 얻어지는 기쁨을 선물 받은 듯하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버거운 삶의 무게를 감당할 힘을 얻는다.

 

  다시 도전이다. 운전 실기시험을 보는 날 아침에 여유 있게 출발한다. 질서 있게 서 있는 긴 행렬이 보인다. 주차장에는 차를 세울 공간이 없다. 가까운 동네의 빈 곳을 찾아 차를 세운 뒤 뛴다. 긴장한 탓인지 배가 아프고 장이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급하게 찾은 화장실 앞줄도 길다. 마음을 다스리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초심으로 침착하게 시험에 응한다.

 

  합격! 5개월 만에 시험을 통과한다. 스스로 삶을 운전할 기회가 연장된다. 나 스스로 달릴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남은 생의 운전대는 주님께 의탁한다고 할까.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freeway)를 달린다. 곧게 뻗은 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한층 시원하다.

   

 

 

 

 

4. 29.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