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어깻죽지 / 정조앤
남편의 어깨에 문제가 생겼다. 주위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오십견이라 했다. 팔을 들어 올릴 때마다 시큰거릴 뿐, 일상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차일피일 미루는 계기를 만들었다. 주치의를 찾아갈 때마다 통증을 얘기했단다. 나이가 들면 생기는 노인성 질환이라고 한다. 그 사이에 에스트로겐 주사를 2번 맞았다. 처음에는 약물 효과가 6개월 이상 지속했다. 그다음은 석 달을 채우지 못하고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MRI를 찍으니 남편의 병명은 어깨 회전 근육 파열이었다. 찢어진 근육을 봉합해서 이어주는 수술인데 100% 기대는 하지 말라고 의사는 말을 덧붙였다
엘에이 할리우드 장로병원에 도착하니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입원 절차를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배치받은 병실 안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간단한 진료를 마쳤다. 때마침 수술을 집도할 송 박사가 들어왔다. 삼사십 분 걸리는 간단한 시술이라고 한다. 나는 1층 카페테리아에서 커피와 그릴 치즈 보리빵을 주문한 후 창가 쪽에 앉았다. 창 너머로 야자수 나무가 장대처럼 서 있다. 큰 잎사귀들이 비바람에 막춤을 추며 너울거리고 작은 꽃잎들은 흩어져 빗물에 잠겨 떠 돈다. 내 마음에도 빗물이 차오른다. 수술이 잘 돼야 할텐데.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다.
휴대전화기가 울렸다. 송 박사다. 남편 수술은 잘 됐다며 회복실로 옮겼다고 한다. 마취에서 깨어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라는 그분의 음성은 차분하면서도 정겹다. 그곳에 머물며 한 시간을 더 보냈다. 병실에 남편과 함께 있다. 깨어나나 싶더니 또 잠에 빠져든다. 마취제가 독하긴 독한 모양이다. 자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왼쪽 어깨가 허벅지만큼 커 보인다. 수술한 부위에 어깨 모양의 플라스틱이 얹어져 있다. 그 위로 테이프로 단단히 고정한 것이 환자복 사이로 보였다. 앞으로 몇 주는 고생을 하겠구나 싶다. 남편 몫까지 일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일까. 내 어깻죽지도 뻐근하다. 창문 곁에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비가 그쳤다.
수척해진 남편을 부축하며 병원 문을 나섰다. 뭉게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해님도 얼굴을 내민다. 촉촉이 젖은 도로 위로 차가 미끄럽게 빠져나간다. 옆 좌석에 앉은 남편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어깨 보호대를 두른 그가 몹시 불편해하는 모습이다.
그 후 남편은 일주일을 집에서 안정을 취했다. 마취제에서 풀려나니까 통증이 몰려오나 보다. 아픔을 견딜 수 없어서 토막잠을 자고 일어나기를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했다. 빠른 회복을 위해서 마약 성분이 든 진통제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는다. 약한 성능의 타이레놀 소염제로 견디고 있다. 그 와중에도 스마트폰으로 가게 CCTV를 확인하곤 한다.
육십 평생 수술이라고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우직하게 살아온 남편, 가장으로, 업주로서 책임 의식이 강한 사람이다. 그의 어깨가 철근이라도 되듯 온 가족이 매달려왔다. 그곳은 안전한 보호소라 여겼기 때문이다. 튼튼했던 어깨가 어느 순간에 축 처졌다. 무거움에 짓눌려서 찢진 어깨가 아픔을 견디며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제 어깨를 빌려 드릴게요. " 난, 속으로 조용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