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높은 곳을 향하여 양상훈
땅 위에 아름다운 꽃이 쉴 새 없이 피어나는 한 인생에는 삶의 의미가 있다.
우리는 사계절 꽃과 더불어 살아간다. 이 세상에 꽃이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거칠고 메마르고 황량할 것일까. 꽃이 만발하는 초원에 벌과 나비가 날라 올 때에 생명의 향기가 스며든다.
꽃을 바라보는 눈은 아름다운 눈이요, 꽃을 가꾸는 정성은 인자한 마음이다.
꽃을 선물하는 마음은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다.
인생을 꽃처럼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 고도 한다.
무릇 아름다움이란 겉에 찬란하게 드러나 있는 외모 보다, 깊이 간직되어 향기를 안고 있는 내면성이 더욱 가치가 고귀한 것이라서, 보면 볼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그윽한 향기로 친근감이 더해가는 아름다움이 훨씬 그 생명력이 길며 값진 것이라 하겠다.
한 가지 고귀한 사랑의 실현을 위해 오래 동안 애써온 사람을 보면 어딘지 함부로 가까이 할 수 없는 위엄과 기품이 감돌아 스스로 존경심이 일어난다.
70년대의 오래전 일이다. 충북 음성군 인곡리 용담산 기슭에 “꽃동네”라는 무의탁촌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
서울에서 용담산을 향해 가는 길은 그 당시 인곡 마을에서 비포장 도로로 꼬불꼬불한 산 고개를 넘으며 짙은 먼지 속에 자동차로 약 한 시간 달려가니, 용담산 입구의 바위 비석에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라” 고 새겨진 표어가 가슴을 설레게 하였던 감회가 지금도 떠오른다.
76년 겨울 어느 날 눈보라가 치는 엄동 설한에 병들고 구걸도 힘든 걸인들이 논두렁 양지아래 쭈그리고 사경을 헤매는 상황을 발견한 사람이 바로 오웅진 신부라는 분이었다. 그 분이 바로 용담산 기슭에 손수 토담을 쌓고, 움막집으로 시작한 사랑의 터전이 바로 오늘날 그 광활한 꽃동네의 초석이었던 것이다.
처음에 우선 18명의 늙고 병든 걸인들을 처음 수용한 이 꽃동네는 오신부의 헌신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80년 8월 청주교구 사제총회에서 한국 천주교의 사회복지 교육기관으로 설립하여 발전을 거듭하여왔다.
그 후 오신부의 헌신적인 열정에 감동되어 사회각층에서 이들을 돕는 회원들로 자발적인 호응를 받아 용담산 주변 약30만평 부지를 확보하여 꽃동네 터전을 본격적으로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다.
심신장애자 요양원, 무의탁 노인을 위한 임종의 집, 결핵환자를 위한 소망의 집 등 8개동에 1,200여명의 꽃동네 가족을 수용하고 있는 실상은 눈물겨운 관경이 었 다.
그 때에 수녀가 안내하는 방마다 기거하고 있는 꽃동네 가족들은 비록 사회에 버려져 의지 할 데 없는 가련 한 사람들이었으나, 주님의 은총 안에 삶의 의욕과 소망에 찬 나날을 보내는 모습을 본 모든 일행은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또한 그들에게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며 헌신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니 더욱 고개가 숙연 해졌다.
우리 일행이 할 수 있는 것이라 곤, 정식 회원이 되어 자주 방문하고 꾸준히 돕는 일이 고작 이었다. 신부 수녀를 비롯 꽃동네 자원봉사자들과 하루를 보내고, 방명록과 회원가입 서명을 하고 아쉽게 꽃동네를 빠져 나왔다.
한 신부가 올린 봉화의 빛이 거치른 산기슭을 사랑의 열매로 변화시킨 사랑의 위대함을 일깨워준 그 당시의 감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세상의 빵 덩어리 보다 생명의 떡과 영생의 샘물을 더 사모하면서 나아가는 아름다운 십자가의 길, 그것은 바로 평화의 길이요, 그리스도를 본받는 길이 아닐까?
그것은 자기중심과 욕심에서 벗어나 땅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독수리가 날개 치며 공중으로 향하여 올라가는 차원 높게 위를 바라보는 생활이다(골 3-2). 독수리는 높이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든다(욥39-27).
구원을 향한 높이 오르는 믿음, 이것은 승천의 믿음이요 독수리 갈은 믿음으로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며 또한 모든 크리스천의 소망이기도 하다.
풍부한 물질도 부귀영화와 권력도 행복을 보장 할 수 없으며, 결코 믿음의 향기와 사 랑의 싹을 틔울 수도 없다. 깊은 물은 소리 없이 흐르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이 넓고 넓은 바다에 이르고 만다. 태산을 움직일 수 있는 신앙이 있다고 외쳐도, 성서를 수백 번 통독 하였다고 자랑하는 신앙인 일지라도, 사랑의 실천이 없다면 울리는 징소리와 꾕 과리 소리에 불과하지 않은가.
거창한 목소리로 외치는 요란한 행동이나, 화려한 외모보다 소박하고 겸허하게 남모른 사랑의 빛과 향기를 전파하며 이웃과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야 말로 시대에 아름다운 유산을 남기고 가는 위대한 사람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