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아침 뒷뜰에 나가보니 담장에 pyracantha 가 밤사이 붉은 옷을 입었다. pyracantha 는 영어로 fire thorn 이라는 뜻으로 봄에는 눈송이 같은 하얀 꽃을 피우고 가을이 되면 말 그대로 불타는 듯 붉은 열매를 맺는다. 애리조나가 원산지는 아닌 것으로 미루어 먼 옛날 배를 타고 바람에 실려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서식하게 되었으리라 상상해본다. 지난봄에는 어느 해보다도 많은 꽃을 피웠다. 몇 해를 두고 보았지만 지난봄처럼 많은 꽃이 한꺼번에 만개했던 모습을 기억할 수 없다. 마치 함박눈이 소복이 담장에 쌓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뭉게구름이 담장에 몽글 몽글 피어오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올봄에는 왜 그렇게 만개를 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작년 가을에 때 맞추어 내려준 비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적절한 시기에 뿌려준 비료가 제 역할을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갑자기 작년 가을 초보 정원사가 지나치게 가지치기를 해서 우리를 두고두고 마음 아프게 했던 일이 생각났다. 아마도 그 초보 정원사가 한 실수가 적중한 것 아닐까?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쩌다 저지른 실수가 우연히 성공의 열쇠가 되는 일을 종종 보아왔다. 마치 여행하다가 길을 잘 못 들어 뜻밖에 아름다운 장관을 목격하게 되기도 하듯이...
이제 사막의 가을이 짙어가면 pyracantha는 정열의 불길을 뿜어내며 온갖 새들을 유혹한다. 발효된 붉은 열매를 쪼아 먹고 취기가 오른 새들은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시작한다. 때로는 비틀거리다가 창에 자신의 몸을 부딪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쿵" 하는 소리도 내서 나
를 몇 번이나 놀라게 했던 일을 기억한다. 올해도 그들이 초대할 흥겨운 가을향연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