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휴가

최 숙희

 

 

 

 

온 가족이 함께 여행한 것이 얼마 만인가. ‘Cirque de solei'’O가 볼만하다기에 미술전공을 하는 딸에게 도움이 되겠다싶어 라스베이거스에 다녀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공지영 책에서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영영 행복은 없어구절을 읽는 순간 시카고 여행을 결정했다.

 

 

2년 전 딸을 로드아일랜드의 대학교 기숙사에 데려다 줄 때 중간 기착지가 시카고였는데 공항의 모던함이 인상적이었다. 마침 방학으로 집에 다니러 오는 딸과 중간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12학년 되는 아들애가 관심 있어 하는 대학도 둘러보고 미국 3대 미술관의 하나인 시카고 미술관도 본다는 교육적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토요일 새벽 LA를 떠나 월요일 밤에 돌아오는 숨찬 여정이었다. 가게를 토요일 하루만 비우고 일요일과 연휴인 메모리얼데이를 이용하였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이었지만 한마디로 좋았다.’

 

 

시내의 원하는 위치의 호텔은 하룻밤에 300달러도 넘어서 큰 침대 두 개있는 방 하나만 빌렸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살 부딪치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렌터카 안 하고도 어디든 걸어갈 수 있어서 좋았고 방에서 보이는 도시 야경도 훌륭했다.

 

 

바다같이 드넓은 미시간 호수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건물들을 둘러보는 투어로 시카고의 첫날을 시작하였다. 1871년 대화재의 폐허위에 새로 건설된 도시는 건축 박물관이란 말이 무색치 않게 독특한 고층건물들이 만드는 스카이라인이 아름답다. ‘Windy city'라는 이름에 걸맞은 강한 바람에 머리는 산발이 되었지만 요트가 그림처럼 떠있는 호수와 아름다운 빌딩숲 사이로 난 길에서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이 도시의 자유와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둘째 날은 오바마 부부가 첫 데이트를 했다는 시카고 미술관이다. 미술관을 향하여 미시간 에비뉴를 걷기 시작했다. 인도와 차도 사이엔 튤립 꽃밭이 있고 곳곳엔 분수와 조각품들이 있어 지루한 줄 몰랐다. 가로수들은 시카고의 유명 건축물 모양으로 전지가 돼있어서 보기 좋았다간식거리만 챙겨온 나와는 달리 남편은 시카고에 대한 공부를 해왔나 보다. Edward Hopper‘Nighthawks'그림을 보더니 식당 안 네 사람의 시선이 하나도 마주치지 않게 표현한 것이 고독한 현대인을 상징한다고 설명을 한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 애쓰는 남편과 아빠의 장황한 설명에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에게서 고독한 현대인이 남의 얘기가 아니구나 싶었다.

 

 

미시간 호수에 연결된 강이 도심을 흐른다. 강에 유유히 떠다니는 배들을 구경하며 길모퉁이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행복이 거창한데 있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몇 달 만에 보는 훌쩍 큰 딸과 대학 입시 준비한다고 방에만 있어 얼굴 구경도 힘들던 아들, 몇 시간씩 같이 일해도 무덤덤하게 지내던 남편, 낯선 도시에서 이렇게 마주 앉고 보니 새삼스레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다.

 

 

미술관에서 에너지를 너무 소모했는지 피곤하여 빨간색 2층 투어버스를 탔다. “진작 탔을 걸 괜히 걷느라 힘 뺐네.” 할 정도로 편리했다. 중요한 지점을 돌며 자세히 설명해 주는데 손님은 원하는 어디서든 내렸다 탔다를 반복할 수 있다. 나의 알량한 영어실력 탓에 설명을 다 못 알아들어서 아쉬웠다. 지금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유명한 Wrigley Gum 건물을 가리키며 원래는 비누판매 회사였는데 사은품으로 껌을 주기 시작한 것이 세계적인 껌 회사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설명 정도이다. 나는 언제나 핵심보다는 중요치 않은 주변 이야기만 기억하는 것이 신기하다.

 

 

밀레니엄 파크에서 강낭콩모양의 조형물과 LED 전광판의 분수를 감상 후 존 행콕 빌딩으로 갔다. 1층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96층 라운지로 올라갔다. 남편이 알아온 정보는 돈 들여서 전망대 갈 필요 없고 라운지의 전망도 훌륭하다.’였는데 진짜 그랬다. 전망대 요금을 아꼈기에 가격 상관없이 칵테일과 디저트를 호기롭게 시켰다. 여자 화장실의 전망은 더욱 환상이라 남편과 아들에게도 화장실 다녀오라 권했으나 남자 화장실은 벽밖에 없다고 한다. 운 좋게 창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 금상첨화였다. 유리창 밖에서 거미 한 마리를 보았는데 어떻게 그 높은 곳까지 올라 왔는지, 거미줄에 먹이가 될 곤충이 걸려는 드는지 궁금했다.

 

 

마지막 날이다. 아침 일찍 로비에 짐을 맡기고 시카고 대학으로 갔다. 오늘따라 일기예보가 정확하여 보슬비로 내리기 시작한 것이 천둥번개가 치며 장대비로 변하였다. 차에서 내리는데 빗줄기가 더욱 세져서 대학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우산이라도 사려고 직원에게 물으니 병원 아이디로 일반인 출입금지 지역을 통과해 지름길로 안내한다. 점심을 사가는 길 이었나 본데 음식이 다 식었을 것 같아 미안했다. 비에 젖은 캠퍼스는 더욱 짙어진 녹음을 배경으로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식은 점심을 먹으면서까지 관광객에게 친절을 베푼 시카고 시민의 마음씨는 더욱 아름답다. 

 

 

궂은 날씨 탓에 시내에 일찍 돌아와 한참동안 천천히 밥을 먹고 그동안 대화 부족이던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긴 대화를 나누었다. 사춘기 이후 서로 데면데면하여 소 닭 보듯 하던 남매도 낄낄댄다.

 

 

남편은 짧은 시카고 여행에 흡족했는지 이제부터 가족여행을 자주 가야겠다며 달력을 훑어본다. “다음 연휴가 9월 노동절인데 어디 가야지?” 한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눈을 감더니 어느새 코까지 곤다. 고단한 가장의 23일 휴가가 끝나가고 있다.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