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가꾸며 / 정조앤
우리 집 뒤뜰에 자그마한 텃밭을 마련했다. 요즈음 아침저녁으로 채소 가꾸는 재미가 쏠쏠하다.
3월 중순쯤, 엘에이 코리아타운에 사는 어느 시인의 집을 몇 사람과 함께 방문했다. 그분은 뒷마당을 농장으로 가꿔놓고 시골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집주인의 안내로 뒤뜰을 돌아보았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연초록 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늘, 파, 고추, 가지, 아욱, 깻잎 등 유기농 채소들이 가지런히 심겨 있다. 뒤뜰 가운데에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빛깔 고운 잉어들이 한가롭게 노닐었다. 뒤편으로는 닭장이 보이고, 그 안에는 여러 마리의 토종닭이 낯선 이들의 방문에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일행 중 한 분이 둥지에서 갓 낳은 달걀을 조심스럽게 꺼내왔다. 신기한 듯 너도나도 만져보았다. 어미 닭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져 왔다.
작은 농장을 부러운 눈길로 둘러보았다. 그분은 텃밭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농사에 관한 일들을 소상히 알려주었다. 토질에 맞는 채소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거름 주는 방법, 그리고 열매를 잘 열리게 하려면 어디에서부터 가지치기 해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벼가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갓난아이를 키우듯 텃밭 일도 손이 많이 간다는 사실도 알았다. 자연학습을 나온 학생들처럼 눈을 반짝이며 모두가 경청했다. 그 집을 나설 때 저마다 몇 개의 봉지가 손에 들려졌다. 봉지에는 채소 모종과 씨앗들, 허브와 다육식물, 선인장 모종 등이 담겨 있었다. 집주인의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듯이 며칠 후 텃밭 만들기 작업에 들어갔다. 시골에서 살 때 어깨너머로 보았던 기억을 더듬었다. 서투른 손놀림으로 뒷마당 양지바른 부분의 잔디를 들어냈다. 삽과 괭이로 굳은 땅을 파헤치고 흙덩이를 잘게 부수어 밭을 고르게 했다. 밭뙈기 모양새가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거름을 사다가 흙과 잘 섞어 놓은 다음 며칠을 기다렸다. 그 후 작은 이랑을 만들어서 각종 씨앗을 뿌렸다. 몇 개의 구덩이를 파서 오이와 호박씨도 심었다. 밭에서 쪼그리고 일을 하다 보니 허리가 뻐근했다. 흙냄새를 맡으며 땀을 흘리고 나니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한 기분이라니. 손에 흙을 묻히며 일을 하던 때가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요즈음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텃밭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밭에 뿌린 씨앗들이 뾰쪽뾰쪽 새싹을 틔우고 있다. 여기저기 시샘하듯 연두 빛 싹들이 돋아나고 있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저요, 저도요”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오는 성싶기도 하다. 머잖아 저 싹들이 자라서 밭은 푸르름으로 물들겠지. 촘촘한 싹들은 솎아내고 쓸모없는 가지는 잘라주어야겠다.
새싹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을 키우던 때가 생각난다. 이 뒤뜰 잔디에서 깔깔거리며 저희끼리 어울려 놀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저 뜰에서 뛰어놀던 두 아들은 잘 자라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갔다. 자식들에게 쏟았던 정성으로 텃밭을 가꾸고 있다. 어린싹들이 잘 자라 풍성한 열매를 맺어주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다.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