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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지붕 아래/ 정조앤

                                                                    

 아들 내외가 의논할 것이 있다며 찾아왔다. 결혼하여 알콩달콩 재미나게 사는데 심각하게 얘기를 꺼내자 잠시 긴장이 감돌았다. 요즘같이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직장을 옮기고 공부까지 하려니 세 식구가 살기에 빠듯하다며 말을 꺼냈다. 일 년만 들어와 살아도 되겠냐며 아들이 넌지시 물었다.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그들에게 무슨 말이 필요하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첫 손자의 재롱을 매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기쁘고 설레었다.

  방 하나 내주는 것뿐인데 마음이 바쁘다. 페인트칠로 새로 하고, 카펫 클리닝을 하니 더욱 깨끗하고 환해졌다. 내 체취가 물씬 배어있는 서재를 작은아들에게 내어주고 서재에 있던 책장들은 안방으로, 책상은 부엌 한쪽에 임시로 옮겨 놓았다. 서재에서 컴퓨터와 마주할 때가 큰 즐거움이요 휴식이었는데 허한 느낌이 든다.  

  집안 분위기가 백팔십도로 달라졌다. 아들네 식구가 들어온 이후 따듯한 온기가 집안 곳곳에 스며들었다. 절간 같이 조용했던 집에 사람 사는 냄새가 기분이 좋다. 넘어질 듯 뒤뚱거리며 걷는 아이를 바라보며 웃음꽃을 터트린다. 순진무구한 어린 생명을 들여다보는 동안 모든 상념을 잊는다. 어느 아이보다 잘나 보이고 귀하게 보이는 건 한 핏줄의 못 말리는 맹목적인 사랑이 아닐까일찍 잠을 재우는 손자의 얼굴을 한 번 더 보려고 저녁 귀가를 서두르게 된다아이의 티 없이 맑은 눈망울과 천진스러운 표정에 하루의 피로가 풀린다출퇴근 시간이 서로 다르다 보니 평일엔 저흰 저희대로, 우린 우리대로 식사를 해결했다주말에는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담소하며 함께 식사하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큰 즐거움이다 

  미국식을 선호하는 나와 착하고 명랑한 며느리, 우린 궁합이 잘 맞는 신세대 고부간이다. 살림하며 아이 키우는 일도 쉽지 않은데 시부모와 함께 사는 며느리가 대견스럽다. 서투른 존댓말이지만 깍듯하게 어른을 섬기는 태도가 기특하고 예쁘다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아들네 식구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 내외도 행복 바이러스에 전염된 듯 전보다 서로에게 관심을 두게 되었다. 어른의 예의를 갖추는 것도 미덕이라 생각하며 노력하고 있다.

  4세대가 모여 살지만, 생활방식은 완전히 미국식이다. 서로에게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만이 앞선다. 할머니와 어릴 때부터 생활해 온 내 아이들, 증조할머니까지 있는 첫 손자, 그들을 지켜보는 우리 부부는 뿌듯하다. 함께 살면서 기억에 남는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한때는 얽매이지 않는 핵가족의 자유로움이 부러웠고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맛보며 산다. 한 지붕 아래서 가족의 정이 익어 가고 사랑의 본질을 생활 속에서 꽃피워 내고 있다

  지상에서 가장 빛나는 기쁨은 가정의 단란함이 아니겠는가.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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