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와 재즈/ 정조앤
헤어지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정이 듬뿍 들었던 애완견은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보다 더 애틋할 수 있다. 이별을 아쉬워하며 두 녀석을 번갈아가며 부둥켜안는다.
어느 날 아들은 태어난 지 2달 된 귀여운 강아지, 빙고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친구 네 어미 개가 네 마리를 낳았는데 그중에 아들과 약혼녀인 샤론이 각각 한 마리씩 입양했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순둥처럼 생긴 멍멍이를 보고는 반색을 했다.
자라면서 식구들의 말을 잘 들어 귀여움을 차지했고 근육미를 뽐내며 늠름하고 의젓해져 갔다. 빙고를 데리고 동네 산책하러 나가면 멋지다는 말을 들을 만큼 외모도 뛰어났다. 빙고와 형제 사이인 재즈가 함께 있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샤론네 집 담장을 수시로 뛰어넘어 동네를 배회하고 다녀서 이웃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도저히 그 동네에서는 데리고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입안에서는 안 된다는 말이 뱅뱅 돌고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재즈가 우리 집에 둥지를 틀었다.
그날부터 개들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점잖았던 빙고는 천방지축인 재즈가 오면서 갑자기 말썽꾸러기로 변했다. 둘이 합세하여 잔디밭을 뜯어내고 흙을 파헤치며 여러 개의 벙커를 만들어 그 안에서 뒹굴며 놀았다. 푸르던 잔디가 벗겨지면서 두 놈의 놀이터로 변했다. 집 안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아들 방에서 베개와 이불을 뒷마당으로 물고 나가서 뜯어서 솜뭉치와 오리털을 사방에 흩어놓았다. 흰 눈송이가 정원 가득했다. 굴뚝 통로에 들어가서 빠져나오지 못해 버둥거리는 재즈의 웃질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며칠 후 우표가 붙지 않은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아들이 봉투를 열어보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거기에는 두 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한 장은 잔디밭에 개똥이 있는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정원에 꽃들이 아수라장이 된 채 널브러져 있다. 너희 집 개들이 담장을 넘어와서 한 짓이니 꽃값 20불을 청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즉시로 아들이 뒷집을 찾아가 죄송하다며 청구한 금액을 주고 왔다.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미국인들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식 정서라면 담 너머로 얼굴 붉히며 개를 잘 단속하라는 훈계조의 말을 듣지 않았을까.
식구들이 모두 직장으로 출근한 지 한두 시간이 지났다. 언제 옆문 틈을 비집고 빠져나갔는지 둘이 나란히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애가 타게 불러도 뒤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오늘도 개들과 기 싸움이 시작되려는 지 가슴이 철렁인다. 아니나 다를까 조용한 거리에는 도와줄 사람도 안 보였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아들에게 전화했다. 거리상으로 집으로 올 형편이 아니었다. 일단 차를 몰고 옆으로 바짝 따라붙었다. 두 녀석은 아는 척도 안 한다. 나는 주인이 아니라서 말을 안 듣겠다는 표정이다. 다른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녀석들이 다른 개를 발견하고는 꼬리를 흔들며 다가갔다. 때마침 주인인 듯한 중년 백인 남자가 있었다. 얼른 그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도움을 청했다. 그는 덩치 큰 개들을 달래 가며 차 안으로 밀어서 태워 주었다. 그때야 겁에 질렸던 내 얼굴이 펴지며 연신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전했다.
그날 저녁에 직장에서 퇴근하고 들어오는 아들에게 언짢은 소리를 했다. 난 도저히 재즈와 빙고가 감당이 안 된다고. 하루가 멀다고 사고를 치는 저 녀석들은 내 말도 듣지 않으니 어떡하면 좋겠냐고. 재즈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곳으로 보내라고 했다. 내가 외출한 사이에 샤론이 편지를 써 놓고 갔다. 그동안 재즈를 입양해 줄 분을 찾는다는 광고를 인터넷에 올렸는데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동안 심려를 끼쳐 드려서 너무 죄송하다며 주말에 그분들이 집으로 오기로 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빙고와 재즈는 족보가 있는 래브라도 레트리버(Labrador Retriever)이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다가가는 따뜻한 성품을 지녔다. 장애자의 눈과 손이 되어 가이드 역할을 하는 안내견이다. 두 녀석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났다. 큰 밴을 몰고 온 백인 중년 부부다. 그들의 인상과 모습 속에서 두 마리의 반려견을 잘 키워줄 것이라는 믿음 갔다. 그들은 보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새 주인을 따라나서는 빙고와 재즈는 꼬리를 흔들어댄다. 차에 오르면서도 슬퍼하는 기색 없이 맑고 선한 눈으로 우리와 눈 맞춤을 했다.
나는 두 녀석을 태운 차가 골목에서 사라져 갈 때까지 멍하니 바라본다. 아들과 샤론은 서로 부둥켜안고 말이 없다.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