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 안의 소망 / 정조앤
큰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 샤론이 산기가 있는 듯하여 병원에 가는 길이란다. 순산하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아들을 말에, 남편과 아빠의 노릇을 동시에 잘하고 있어 흐뭇했다.
아, 이제 나도 할머니가 되었네! 정신이 번쩍 든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그렇게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구나. 아는 분이 “꽃 할머니가 되셨군요" 라며 축하해 주었다. 그래, 이제 나는 꽃 할머니라 생각하자. 이왕이면 '예쁜' 이란 단어가 첫머리에 들어가면 더 좋겠다. 아직은 할머니 될 때가 아닌데 하면서도, 첫 손자를 만날 생각에 예쁜 꽃 할머니를 떠 올리니 참 명칭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직접 만든 꽃바구니와 한 아름의 풍선을 차에 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누굴 닮았을까. 준수하게 잘 생겼을까. 마음 가득히 손자만을 생각했다. 병원에 도착하여 할머니가 된 기분으로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깨끗한 병원 시설과 친절한 간호사의 인사에 기분이 좋아졌다. 입원실 문을 살그머니 밀어내고 들어서니 작은 바구니 안에 귀여운 첫 손자가 평화로운 얼굴로 쌔근대며 자고 있다.
그 모습에 반해 한참을 내려다보느라고, 아들과 며느리와 눈 맞추는 것도 잊었다. 수고한 며느리와 포옹하며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산고를 겪으며 고생 했을터인데 며느리는 더 밝은 얼굴로 활짝 웃는다. 마른 몸집에 배만 볼록 나와서 손자가 작을 줄 알았는데, 신생아 답지 않게 똘똘해 보이고 건강하다. 신기한 듯 들여다보며 놓지 않으려는 남편에게서 간신히 손자를 넘겨받아 가슴에 품었다. 우리 집안에 주신 생명이 너무 귀하고 소중하여 가슴이 터질 듯하다. 아, 요렇게 귀엽고 예쁘다니! 혈색도 좋고 이목구비도 반듯한 손자의 볼에 뽀뽀를 해주며 속삭인다. 난, 예쁜 꽃 할머니란다.
결혼 1년 4개월 만에 첫아들을 얻는 아들과 며느리는 남다른 집안끼리의 만남이다. 며느리가 된 아이의 부모와는 이민 초기에 교회에서 만나 지금까지 친구처럼 지내는 허물없는 사이다. 3년 전에 친구는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3남매와 살고 있다. 외동딸로 자란 며느리는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늘 웃는 얼굴에 성격이 밝고 심성도 고운 아이다. 평소에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면 결혼하고 싶다고 했단다.
아들내외가 다정하게 얘기 나누는 모습을 힐끔 곁 눈길로 볼 때가 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커플인지 샘이 날 정도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들은 남의 눈치를 아랑곳하지 않고 스킨십을 잘한다. 미국 사회에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지만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려면 뜻하지 않은 자리에서 인종 차별을 겪을지도 모를일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신앙심으로 잘 극복하길 바라고 지혜롭고 현명하게 대처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말고 아메리칸-코리언으로 당당하게 잘 살아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민 3세로 태어난 손자에게는 사랑을 많이 주는 할머니. 앞날을 축복하며 기도해 주는 믿음의 할머니. 손자를 위해 예쁜 글도 써서 주고, 그림으로 그려주는 할머니. 사진을 영상으로 DVD에 담아주는 자랑스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나의 사랑하는 손자야,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다오. 할머니의 소망은 이 땅에서 자손들이 번창하고 축복받고 사는 것이란다. 아! 그리고, 잊지 말아라. 말 배우기 시작할 때는 할머니를 "뷰티플 그랜드 맘"이라 불러다오.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