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도시락
박유니스
전날 저녁부터 설레었다.
처음 학교에 도시락을 싸 가던 날, 가족단위의 외식이 별로 없던 그 시절엔 항상 온 식구가 한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는데 혼자 독상을 받게 된 기분이었다.
“학교 갈 준비는 하지 않고 부엌엔 왜 자꾸 나오니?”
어머니가 타박하셨지만 도시락 반찬이 궁금해 매캐한 연기가 자욱한 부엌을 연신 들락거렸다. 첫날이라고 어머니는 언니들 도시락에도 자주 안 넣어주던 장조림과 달걀말이를 싸주셨다. 그 후로 그런 반찬은 생일에나 구경할 수 있었고 도시락 반찬은 거의 매일 멸치볶음과 콩자반이었다.
반찬 내용은 비슷했지만 내 도시락통은 친구들과 조금 달랐다. 급우들 도시락은 대부분 흰 알루미늄이었는데 내 도시락은 때깔 고운 노란 색이었다. 언니 둘에 내 뒤를 이어 중학교에 입학한 동생 것까지 아침마다 도시락을 네 개나 준비해야 하는 어머니는, 반찬은 차별화 할 수 없지만 한 번 구입하면 오래 쓰는 자녀들 도시락 통은 약간 더 투자하여 차별화를 시도했던 것이다.
내 유별난 그릇 사랑은 그때부터가 아닌가 여겨진다. 지금도 내 집 찬장엔 거의 쓰지 않는 빛깔 고운 그릇들이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다. 집을 옮길 때는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정리하지만 이사하고 나서 살펴보면 그릇은 거의 모두 챙겨 오곤 한다.
본차이나는 레녹스나 로젠탈같은 견고한 것보다 리모주처럼 부드럽고 무늬가 고운 브랜드가 더 마음에 든다. 프랑스 화가 르누아르의 고향이기도 한 리모주는 그곳에서 나오는 특수한 진흙으로 만드는 도자기로 유명한데 디자인과 색상이 뛰어나다. 티 포트와 찻잔으로는 아서 우드 앤 스트라포드셔가 우아하다.
딸아이에게 준다는 핑계를 대고 오래전에 리모주를 한 세트 사 뒀었다.
결혼하게 됐을 때 딸에게 보여줬더니 대번에 머리를 흔든다. 색상이 요란해서 거기 담긴 음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나도 딸이 그러리라 짐작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가의 물건을 구입하면서 그 정도의 변명은 나 자신에게 필요했을 터이다. 무늬 없는 흰색 로젠탈을 딸은 택했고 리모주는 내 집 찬장에서 처녀로 고이 늙어가고 있다.
아들과 딸네 가까이 살게 된 후부터 내 집 부엌엔 두 집에서 갖고 오는 음식이 늘고 있다. 음식을 담아주는 뚜껑 있는 용기도 나날이 쌓인다. 그 중 프라스틱은 거의 아들집에서 온 것이고 사기그릇들은 딸네 집에서 온 것이다. 음식을 담아주는 마음이야 프라스틱과 사기 그릇 만큼 차이가 날까만 내게 음식을 담아줄 때, 살림꾼인 며느리는 제 찬장을 열고 지금 나가서 돌아오지 않아도 아깝지 않을 용기를 고르고 딸은 엄마가 좋아할 깜찍한 유리그릇을 집는다. 그 아들과 딸은, 기를 땐 내겐 둘 다 유리그릇이었음을 지금 알고나 있을까.
오랜 유학 생활끝에 한국에 돌아가 지낼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아이들과 함께 자주 미국에 출장을 오곤 했는데 반년씩 이쪽으로 왔다가 귀국하면 아이들은 그동안 익힌 한국말을 다 잊어버리곤 했다. 게다가 아이들 소지품은 한 번 잃어버리면 그것으로 끝이었는데 아들은 걸핏하면 도시락 통을 잃어버렸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통학 버스에건 어디에건 두고 왔다.
혼 내주려고 하루는 일부러 도시락을 넣어주지 않았는데 그날 방과 후에 집에 온 아들은, “오늘도 내 도시락을 누가 집어 갔다”고 했다. 나는 속이 쓰린데 남편은, “우리 집에 에디슨이 난 모양”이라고 박장대소했다. 남편은 미국 출장길마다 부지런히 어린이용 도시락 통을 사 날랐다.
얼마 전 가까이 지내는 지인이 집에서 만든 조청을 앙증맞은 유리병에 담아서 조금 나눠 주었다. 달콤한 조청의 맛에 취하고, 담아 준 그릇의 예쁨에 취하고, 거기 담긴 지인의 마음에 취했다. 조청처럼 달콤한 그 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