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자라지만 쉬지 않으리

 

 

최 숙희

 

 

몸을 움직이는 운동은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싫어했다. 운동과 담쌓고 살다 보니 군살이 찌고 맵고 짠 것을 좋아하는 식성 탓에 혈압도 생겼다. 운동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테니스와 골프를 배웠지만 운동신경이 없고 싫증을 잘 내니 어느 하나 끝장을 보지 못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무작정 걸으면 된다는 친구의 꼬임에 산악회를 가입했다. 등산은 올라간 곳에서 내 힘으로 내려와야 하므로 운동 싫어하는 나를 장시간 걷게 하는 유일한 것이다. 걸음이 느린 내가 가뭄에 콩 나듯 정상에 가면 일행의 기립박수를 받는데, 웃픈 현실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세 번째로 높은 화이트마운틴(14,252ft)을 다녀왔다. 휘트니 산, 존 뮤어 트레일, 히말라야 원정을 가기 전 고소 적응을 위해 가는 걸로 알았기에 감히 엄두를 못내다가 남편이 존 뮤어 트레일을 갈 계획이라 나도 따라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가기 전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풍경이 묘하게 사람을 끌었다. 완만하고 부드러운 능선의 황갈색 화이트마운틴은 신비로웠다. 이제껏 다녀본 산들과는 다른 분위기다.  모르는 행성에 간 느낌이다. 고소만 안 온다면 왕복 14마일이 조금 넘지만 나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12000ft에서의 캠핑이라 고소 때문에 두통이 와서 잠을 한숨도 못 잤다. 하지만 아침 잠 많은 내가 일출을 본 것이 얼마만인가. 감격이었다. 자연 풍광에 대한 느낌을 충분히 담아낼 필력이 없음이 아쉽다. 뜨거운 사막의 태양에 바싹바싹 타는 입술을 적실 겸, 울렁거리는 속을 달랠 겸 자주 멈추며 물을 마셨다. 한여름에도 눈 덮인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장엄함, 청명한 푸른 하늘, 자잘한 검붉은 돌 사이에 지천으로 피어난 키 작은 이름모를 하얀 꽃들, 바쁘고 빠르게 먹을 것을 찾아 뛰어다니는 마모트와 다람쥐, 멈추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철벅지를 뽐내며 산악자전거로 산을 오르는 이들의 체력이 부럽다. 집에 돌아가려면 4시까지는 캠핑장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내 발걸음으로 오늘 정상은 틀렸다.

 

 

돌아오는 길에 고대 브리슬콘 소나무숲(Ancient Bristle Cone Pine Forest)을 보았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 중 수명이 가장 길어 현재 5000년을 넘어 산 것도 있다고 한다. 수천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갖은 풍상에 나무껍질이 벗겨지고 나뭇가지는 비비 꼬이고 비틀린 처절한 모습이다. 방문자센터에 가보니 브리슬콘 소나무의 다양한 사진과 그림, 설명이 있었다. 이 지역은 오래전 바다 밑이었고 흙의 주성분이 알칼리 석회석이라 보통의 식물이 살지 못하는데 예외적으로 브리슬콘 소나무만 자랄 수 있다고 한다. 건조한 토양과 차가운 온도, 거센 바람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경쟁자가 전무한 가운데 느리게 성장하는 특성이 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사는 나무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느리게 성장(Grow slowly)'문구가 내 주의를 끌었다. 그래, 나는 느리게 걷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아. 꾸준히 끈기 있게 하다보면 산과 친구 먹기가 가능해지겠지. ’오늘은 여기까지  왔지만 곧 또 오렴, 나는 항상 이 자리에 있어‘, 화이트마운틴의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8/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