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숙자
퓨전수필 행시 모음
<문학은 최고의 예술>
문풍지가 떨리는 모양을 보니
학이 춤을 추는 것 같구나
은파의 멜로디 따라 곱게 흔들리는 너는
최초의 발레리나가 아니었을까
고고하면서 부드럽게
의연한 기상을 들어내는 비상은 가히
예술의 경지에 도달했구나
술술 풀리는 춤사위를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자 그 누구랴.
<낙엽따라 바람따라>
낙엽
엽록소 빠져나간 가을 잎
따로 또 같이 바람 따라 흔들린다
라르고 선율에 춤추는 무희처럼
바야흐로 오페라 시즌
람메르무어의 루치아가 막을 올렸다는
따끈따끈한 뉴스
라벤다 향기처럼 나를 매혹시킨다
-2012.08.15.
<엘에이의 비>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듣고 있으면
에너지가 저절로 솟아난다
이렇듯 장엄하고 씩씩한 음악이 또 있을까?
의기양양 전승한 장군 같다
비엔나 왈츠보다 훨씬 더 경쾌하다
-2013.02.08.
<구월의 민낯>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월색이 교교한 밤 바다가 생각난다
의당 심포니에 취하여야 하련만
민한 내 마음은 왜
낯선 달빛 속으로 만 녹아드는가
-2013.09.01.
<나목의 꿈>
나, 예전엔 날씬하고 멋있는 발레리나였어.
목이 길고 키가 크고 눈도 커서 서구적인 외모라 했지.
의당 지금도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줄 알고 있어. 옛날 친구들은.
꿈 같은 현실은 루벤스의 명화 속 여인을 닮아가고 있는 것.
-2013.11.23.
<겨울편지>
겨울새 우는 소리를 들어보셨나요?
울음인지 노래인지 가슴 뜯는 애절함
편곡된 베르디의 레퀴엠 같고
지극히 절제된 사랑 노래 같아
-2014.12.03.
<은빛호수>
은파를 들으면 달빛 젖은 푸른 밤이 생각난다.
빛 고운 은빛 물결 신비롭고
호수 속 둥근 달 환상이던 밤.
각별한 사람과 들었던 와이만의 은파
-2015.06.20.
<여백그리기>
여름 한 철 뜨거운 불의 열기 속에
백일홍 헉헉대며 지쳐갈 때
그림자 드리워 준
리기다 소나무
기막히게 고마운 생명의 은인
-2015.10.01.
<쉬어 가는 의자>
쉬어 간들 어떠리'에 뿌리 치는 벽계수
어찌 그리 정인의 타는 가슴 모를까
가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세월인데
는개처럼 촉촉한 달빛 속을 훠이 훠이
의관은 추레해도 넘치는 저 기백
자행 자지 그 행동을 누구랴 막을소냐
-2016.11.7.
<사람이 고향>
사랑의 비극을 담은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보셨나요?
이 오페라 중에서 ‘광란의 노래’는
고경에 빠진 루치아가 12분 동안 혼신을 다해 부르는데
향비파 닮은 플루트 연주가 관객들 마음에 비를 내립니다.
-2017.1.22
< 나 지금 가네>
나룻배 타고 임진강을 건넜네
지난해 여름보다 더 먼 지난해
금빛 모래사장 황금빛 강변 너머
가고픈 내 고향 송악산 기슭
네 잎 클로버 지천으로 깔린 마을
-2017.11.14
<수필의 멋과 격>
수묵화 한 점이필방에 걸려 있네
의 양피지 화선지에
멋들어진 저 필체
과필로 썼는가
격조 높은 시 한 수
<감이 익을 무렵>
감미롭게 들려오는 저 멜로디
이 고운 선율의 곡명이 무엇일까
익숙한 곡이련만 작곡자가 생각 않나
을야도 지나고 삼경이 가까운데
무언의 음률이 머릿속을 헤집네. 아! 이제 그만 잊고 잠을 청하
렵니다
4/8/2018
<여름 소나기>
여기 황당한 시제 있네
름은 북한 말의 첫 글자
소리 글로 써도 쥐어 짜야 할 판인데
나는 행시 도저히 못 짓겠네
기량이 딸려
5/15/2019
<눈물겨운 눈>
눈 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른 겨울
물 결치는 잎새들이 너무 푸르러
겨 우네 눈이 없어 삭막한 이곳
운 명처럼 올해는 눈을 볼 수 있을까?
눈 이여! 실수로라도 한 번 푸짐히 내리소서
11/30/2019
<그리운 얼굴>
그리운 그대 이름은
리골레토 1막의 아리아
운명적 사랑에 빠진 질다는
얼토당토 않게 만토바 공작을 사랑하네
굴곡진 그의 삶, 사랑 대신 죽음 맞네
8/8/2020
<새해 소망>
새 소리 바람 소리 숲의 아침 열리네
해맑은 햇살, 나무 사이 분사되고
소슬한 가을 바람 이리저리 불어 대니
망초 나무 갈 잎 분분이 흩날리네
<또다시 봄은>
또 르륵 또르륵 낙숫물 소리가
다 이내믹한 음률 같네
시 나고그에서 들리는 올갠소리 같고
봄 들녁에 지져귀는 새 소리도 같아
은 연중 파고드는 사랑의 노래련가
<시간의 선물>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핀란디아를
간담 없이 들었던 때가 있었다
의기소침하여 매사 의욕이 없을 때
선뜻한 도입부 공포의 음률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하였다
물결이 스며들듯 앙윽고 후반부에 찾아온 마음의 평안
<여름 수박>
여 여의주를 입에 물고 승천하는 용
름 늠름하고 신비롭기 한이 없네
수 수천 년 내려오는 전설 속의 동물
박 박연폭포 희롱하며 노닐고 있네
<마지막 잎새>
마지막 잎새는 너무 외로워
지천으로 달렸던 잎 간 곳이 없네
막바지 꼭대기에 홀로 남아서
잎자루 달랑달랑 흔들고 있네
새들새들 말라가는 마지막 잎새
8/16/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