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미티 캠핑을 다녀와서
최 숙희
산악회에 가입한 후 1년에 두 차례 대형버스를 타고 가는 장거리 캠핑에 꼭 참석한다. 경쟁과 속도에 사로잡힌 일상을 잊고 자연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산악회 ‘장금이’ 환희씨가 새벽에 만들어 왔다는 김밥을 돌린다. 싱싱한 아보카도에 오이, 깻잎과 우엉 채가 들어있다. 한식 김밥과 캘리포니아 롤이 조화를 이룬다. 아침 일찍 나오느라 빈속이어서 더욱 맛있다. 맛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나의 이민생활도 이 퓨전 김밥처럼 한국과 미국의 장점을 살리고 싶다.
운이 좋았다. 날씨 때문에 1년 중 5~6개월만 열리는 티오가 길(Tioga Pass Road)이 열려 아름다운 경치 덕에 7시간의 장거리 여행도 지루하지 않았다. 저녁 메뉴는 홍어무침과 돼지족발 샐러드다. 평소에 먹어보지 않던 것을 솜씨 좋은 회원이 준비해 왔다. 졸며 깨며 버스 탄일 밖에 없는데 꿀맛이다. 산속은 어둠이 빨리 찾아 왔다. 자다가 깨서 혼자 나와 하늘을 보니 휘영청 보름달과 수천의 별들이 몽환적인 밤하늘을 만들었다. 깊은 산속의 밤은 춥지만 낮에 본 하얀 도그우드 꽃(Dogwood)이 달빛을 받아 우아하게 봄을 알린다.
일기예보 때문에 비가 안 오기만 해도 감지덕지다 했는데 산들 바람이 불어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반짝이는 햇살아래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숲길을 걸었다. 고개 숙인 고사리 어린순이 앙증맞고 이름 모를 들꽃도 탄성을 자아낸다.
하이킹을 시작하며 통나무를 헛디뎌 한쪽 발이 냇물에 빠졌다. 양말을 벗어 짜니 물이 엄청 나온다. 맨발에 등산화를 신을 수도 없고 젖은 양말을 다시 신을 수도 없는 난감한 순간이었다. 마침 선배님이 여분의 양말을 주셨다. 무좀용 발가락양말이다. 민망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신고 걸어보니 발가락이 서로 닿지 않아 오래 걸어도 물집 생길 일이 없겠다. 한 수 배웠다.
멀리 하프돔이 보이는 요세미티 포인트에서 점심을 먹었다. 수백 미터 화강암이 땅에서 솟구쳐 오른 듯 암벽들이 위풍당당하다. 내려다보니 탁 트여 펼쳐진 요세미티 빌리지가 보여 눈이 시원하다. 빵과 과일, 커피 한잔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새벽에 만들은 주먹밥과 아보카도딥과 칩을 권한다. 부지런히 수고하며 섬기기 좋아하는 산악회 장금이의 솜씨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눈이 녹아 생긴 요세미티 폭포의 웅장한 물살이 시원하다. 폭포 하단에 무지개가 걸렸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라고 말하는 듯하다. 깎아지른 절벽의 철계단을 나는 겁이 많아 네발로 걷기도 했다. 내려오는 길은 계단이 가파르고 잔돌이 많아 힘들었다. 어느새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발목을 접질려 일행에서 처진 이를 부축하러 원로 선배 두 분이 다시 올라가셨다. 배려와 헌신을 배운다.
캠프파이어 속에서 고구마는 익고 무사히 하루 일정을 마친 후의 안도감, 성취감에 행복하다. 더 바랄게 없는 순간이다. 몸은 뻐근하지만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에서 진정한 안식과 치유를 얻었다. 휴식을 통해 얻은 활력과 에너지로 내일은 더 멀리 뛰어가야겠다. 재충전의 기회였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8/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