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수필 제 20집 - 특집 / 신혜원
재미수필문학가 협회는 나에게 수필로 만난 친정 식구이다,
오래전부터 내 속에서 움틀 거리며 보이지 않는 자아가 나에게 글을 쓰도록 이끌었다. 고달픈 이민 생활을 하며 마음을 털어놓을 방법을 찾던 중 노트에 그저 일기처럼 나의 마음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며 쓰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새 나의 속내를 친정어머니께 털어놓듯 쏟아내니 글쓰기가 내 친구가 되고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도 되었다. 왠지 써 놓으면 마음이 후련하고 정리가 되며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남편과 자녀를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하며 사느라 내가 하고 싶은 취미생활은 접어둔지 오래였다. 그나마 두 아들이 대학을 가면서 점점 멀어지고 결혼까지 모두 하고나니 부부 외엔 남는 것이 없는 듯 친구처럼 기대며 살고 있다. 하지만 남편과 나의 취미는 너무도 달랐다. 나는 남편의 취미인 스포츠엔 관심이나 흥미가 없다. 나는 자연히 뭔가 읽고 쓰는 일에 시간을 보내야했다. 남편이 가끔 내 글을 들여다보며 혹평을 하면서 초를 칠 때면 나는 글을 쓸 의욕조차 싹 가시게 되었다. 채찍이 때로는 자극이 되기는 했지만 …….
그러던 2013년 여름에 오래전에 써서 묵혀 놓았던 글을 퇴고해서 수필문학가협회에 기고하게 되었다. 그 중에 한편 가장 많이 울며 써 놓았던 글, ‘감사세요’로 신인상을 받게 되어 수필문학가협회의 회원으로 한식구가 된 것이다. 그땐 내 스스로 어떤 기대감과 자만심이 앞서서 그 상 만으로서는 만족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뒤늦게야 알았다. 그 순수했던 수필이 어느새 내 눈물을 닦아준 치유의 글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글을 좀 쓴다는 생각이 엄청 잘못됨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는지, 얼마나 배울 것이 많은지 갈수록 부끄러워지고 어려워져서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형제자매처럼, 어머니처럼, 붙잡아주고, 이끌어주는 수필 문학가 협회 식구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그 도움이 없었으면 더 깊히 문학을 접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학전공을 하지 않은 이상 어디 가서 그 좋은 강의를 들으며 합평을 받아 볼 수 있었겠는가.
지금도 감히 문학가라든가 문인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럽고 과분할 뿐이다. 나는 협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연륜 있는 선배와 어르신의 지도를 받아 가며 자라야 할 유치원생(5년차)이다.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문맥의 흐름은 완벽하지 않아서 협회 안에서 지도해 주는 선배들의 조언도 받아야 안심이 된다. 때론 아픔을 쏟아 놓아도 마냥 받아주고 기다려주고 감싸주는 친정어머니 같은 어른들의 사랑과 격려를 받으며 성장해야한다. 또 어린 동생이 등단해서 들어와도 품어주고, 그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면 배워가며 세워주고 함께 가야 한다. 독불장군으로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협회라는 대가족 속에서 눈과 귀와 입을 통해 바르게 성장하도록 격려를 받을 때 다시 글을 쓸 용기를 갖게 되었다.
급변하는 초현대의 기술과 예술을 익히며 따라가자면 나는 아직도 감히 재미수필문학가라고 말하기가 두렵다. 재미있고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나아가서 감동까지 받을 수 있는 글을 쓰기에는 머나먼 길인 것 같다. 그리고 아직도 혼자서는 바로 서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수필 문학가 협회라는 숲을 쉽게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가장 힘들 때 글로 털어놓고 치유 받을 수 있는 곳은 그래도 친정식구가 있는 그 울타리 안에 들어왔을 때가 아닌가싶다. 그러니 재미수필가 협회를 어찌 쉽게 잊고 떠날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재미 수필가 협회는 내게 언제나 푸근한 친정 식구 같은 존재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