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숲이 신성하다 / 김훈  

 

 

 

지금, 오월의 산들은 새로운 시간의 관능으로 빛난다. 봄 산의 연두색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수목의 비린내는 신생의 복받침으로 인간의 넋을 흔들어 깨운다. 봄의 산은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로워서, 지나간 시간의 산이 아니다. 봄날, 모든 산은 사람들이 처음 보는 산이고 경험되지 않은 산이다. 그리고 이 말은 수사가 아니라 과학이다.

휴일의 서울 북한산이나 관악산은 사람의 산이고 사람의 골짜기다. 봉우리이고 능선이고 계곡이고 간에 산 전체가 출근길의 민원 지하철 안과 같다. 평일 아침저녁으로 땅 밑 열차 속에서 비벼지던 몸이 휴일이면 산에서 비벼진다. 휴일의 북한산에서는 사람이 없는 코스를 으뜸으로 치고, 점심 먹을 자리를 찾을 때도 사람 없는 자리를 다투다가. 사람 없다는 코스로 너도나도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니 가엾은 일이다. 이래저래 비벼지게 마련이다. 산은 적막하지 않으면 산이 아니다. 산의 아름다움은 오직 적막을 바탕으로 해서만 말하여질 수 있다. 서울의 산은 도심과 가깝고, 일상과 잇달아 있다. 노적봉이나 만경봉 꼭대기에는 어린이들도 올라와서 논다. 휴일의 산이 군중으로 뒤덮이는 인산人山이라 하더라도 산에는 여전히 적막과 일탈의 유혹이 있다. 삶이 고단하고 세상이 더럽고 마음속에서 먼지가 날릴수록 산의 유혹은 더욱 절박하다. 그 유혹은 흔히 하산 길에 깨어져 버리는 몽환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삶에 대한 유혹이 없다면 누가 비지땀을 흘리며 이 만원 지하철 속 같은 인산을 오르겠는가. 똑같은 등산화와 등산모 차림의 군중 틈에 끼어 앉아 마른 김밥을 씹으면서도 우리는 저 빛나는 백운대, 만경봉, 인수봉, 노적봉, 원효봉, 의상봉 들과 독대獨對 할 수 있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유럽 알피니즘의 거장이다. 그는 히말라야에 몸을 갈아서 없는 길을 헤치고 나갔다. 그는 늘 혼자서 갔다. 낭가 파르바트의 8천 미터 연봉들을 그는 대원 없이 혼자서 넘어왔다. 홀로 떠나기 전날 밤, 그는 호텔 방에서 장비를 점검하면서 울었다. 그는 무서워서 울었다. 그의 두려움은 추락이나 실종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외로움이었다. 그 외로움에 슬픔이 섞여 있는 한 그는 산속 어디에선가 죽을 것이었다. 길은 어디에도 없다. 앞쪽으로는 진로가 없고 뒤쪽으로는 퇴로가 없다. 길은 다만 밀고 나가는 그 순간에만 있을 뿐이다. 그는 산으로 가는 단독자의 내면을 완성한다. 그는 외로움에서 슬픔을 제거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외로움의 크고 어두운 산맥을 키워나가는 히말라야를 혼자서 넘어가고 낭가 파르바트 북벽의 일몰을 혼자서 바라본다. 그는 자신과 싸워서 이겨낸 만큼만 나아갈 수 있었고, 이길 수 없을 때는 울면서 철수했다.

조선 선비들의 산행은 등산이 아니라 관산觀山이나 유산遊山에 가깝다. 그들은 자신과의 싸움의 방식으로 산에 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과 화해하기 위하여 산으로 갔다. 그들은 산 속에서나 글 속에서나 기험崎險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고려 중엽의 문신 이인로는 삶 너머의 현묘함을 지극히 사랑했던 모양이다. 그는 속세와는 아예 인연을 끊기로 작정을 하고 '청학동'으로 알려진 유토피아를 찾아서 신선들과 벗하기 위해 지리산으로 갔다. 여러 마리의 소에 짐을 싣고 소를 타고서 개성에서부터 경남 하동군 화개에까지 갔다하니 그의 행장은 가히 장관이었을 터이다. 산 속을 여러 날 헤매었지만 그는 청학동을 찾지 못했다. 그로부터 2백 년이 훨씬 더 지난 뒤 조선 도학의 비조인 김종직과 그의 제자 김일손이 따로따로 지리산에 올랐다. 그들도 청학동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청학동이 어디인지 알 수 없고, 발 디딘 곳이 바로 청학동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청학동을 알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이 남긴 기록의 요점이다. 산은 유토피아의 몽환으로 인간을 유혹하지만. 김종직과 김일손은 끝내 이 세상의 아수라 속에서 쓰러졌다. 김종직은 무오사화 때 부관 참시됐다.

퇴계는 평생의 산이 가까운 고향 마을에서 살았다. 산 가까이 살기 위하여 그는 무려 40여 차례나 임금에게 사직서를 보냈다. 퇴계는 안동의 청량산을 즐겨 찾았고 멀리 갈 때는 풍기의 소백산까지 다녔다.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며 산수의 의미를 가르쳤는데 한 번 산행에 며칠씩 걸렸다. 퇴계는 도피와 일탈로서의 산행을 나무랐다. 산속에서 '청학동'을 묻는 자들의 몽환을 퇴계는 꾸짖었다. 산에 가서 '안개와 노을을 마시고 햇빛을 먹으려는 자들'을 퇴계는 가까이하지 않았다. 산에 속아 넘어가서 결국 자신을 속이게 되는 인간들을 퇴계는 가엾게 여겼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겠다'는 것이 산에 처하는 퇴계의 마음이다. 산이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고 그 정화된 마음으로 다시 현실을 정화할 수 있을 때 산은 아름답다. 산에 관한 퇴계의 글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퇴계의 산은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구현되어야 할 조화의 산이다.

우리는 메스너의 길을 따라서 산에 오를 수도 없고 한산자나 도가의 길을 따라서 산에 오를 수도 없다. 메스너를 따라가자니 외로움과 싸울 일이 두렵고, 한산자를 따라가자니 몽환의 열정이 모자라기도 하고, 우선 생활이 발목을 잡는다. 아마도 우리는 퇴계의 멀고 먼 뒤를 따라서 겨우 산에 오를 수 있을 터이다.

퇴계의 산행은, 돌아서서 산과 함께, 산을 데리고 마을로 내려오기 위한 산행이고 인간의 마을을 새롭게 하기 위한 산행이다. 마음속으로 산을 품고 내려오려 해도 산은 좀처럼 따라오지 않는다. 휴일의 날이 저물고 사람들 틈에 섞여 산을 내려올 때, 성인은 벌써 산을 다 내려가서 마을에 계신다. 천하에 무릉도원은 없다. 

산에서 길을 잃었던 사실을 사오 년이 지난 지금에야 깨닫는다. 더 이상 산에 오를 수 없는 처지(심한 무릎 부상)때문일까. 산은 내게 환상과 몽환이 다분한 대상이다.

퇴계 선생에게 나는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고 꾸짖음을 받아야 하고 가엾게 여길 존재이다. 산에 속아 넘어가서 결국 자신을 속이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나는 한산가나 도가의 길을 따라나설 만큼 몽환에 빠지지도 않았고 메스너처럼 처절한 자신과의 투쟁으로 정복하겠다는 열정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설 자리가 없다. 일탈이라는 변명으로 직진만이 허용된 곳에서 꼬일 대로 꼬이고 굽은 길을 찾으려 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가 공을 들이고 있는 글쓰기에 직면한다. 언제나 커다란 산이요. 거대한 물음 덩어리였다. 어떻게 길을 내고, 어떻게 길을 밀면서 나갈 것인가. 정상은 아득한데 먼발치에서도 숨이 가쁘다. 아직은 이름 모를 들풀과 손때가 깊은 노린재나무와 스치는 사람들의 거친 호흡에 귀를 기울이라는 뜻일까. 퇴계 선생의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더듬고라도 내려갈 수 있을지. 쉽게 길을 내주지 않으려는지 안개처럼 발목을 휘감는다. 길을 잃은 게 분명하다.

내가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글은 이미 하산하여 세상 속에 계시는데​… 그러고 보면 하산은 누군가, 혹은 자신이 자신에게 하산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져야 가능한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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