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환경조사서
신순희
지금 우리 집에 필요한 건 다 있다. 주방에는 오븐을 비롯하여 냉장고에 식기 세척기 그리고 세탁기. 전부 미제다. 전기만 꽂으면 된다. 거실에는 오디오 비디오가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방마다 전화기가 있고도 모자라 각각 소지하고 다니고, 컴퓨터도 각자 하나씩 가지고 있다. 넘치고도 부족하다 욕심이 끝없는 세월을 살고 있다.
시간을 거스르면 모자란 것으로도 만족하던 시절이 있었다. 다 같이 가난했던 어린 시절, 누구 집에 피아노가 있다면 부럽긴 해도 기죽진 않았다. 사는 게 고만고만 비슷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나눠 준 ‘가정환경 조사서’에는 중학교 일학년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질문이 있었다. 동산은 뭐고 부동산은 무언지. 그때는 복덕방이란 말만 들어 지금같이 부동산이 익숙지 않았다. 아버지는 의아해하는 나를 이해 시키려 애쓰셨다.
“동산은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돈이고 부동산은 움직이지 않는 재산이다. 예를 들면 집이라던가 땅이다.”
“ 그럼 우리는 동산이 얼마고 부동산은 얼마라고 써야 하나요?”
“ 글쎄다. 이 집이 얼마나 하는지 생각 좀 해봐야겠구나.”
아버지 직업은 또 뭐라 해야 하는지. 상업이라 쓰고 보니 괄호 안에 ‘구체적’이라는 글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게 그리 중요한 건가. 아버지가 무직인 친구는 아버지가 양말공장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내심 놀랐다. 그래도 적어낸 서류는 선생님만 볼 수 있으니 다행이다.
교실에서 선생님의 질문에 거수로 답하라고 하는 건 진짜 싫었다. 선생님은 항목 하나하나를 불러가며 물었다. 라디오로 시작해서 집에 텔레비전 있는 사람 손 들어봐라, 냉장고 있는 사람, 전화 있는 사람…아이들은 슬금슬금 다른 친구들 눈치를 살폈다. 피아노가 있는 사람? 아이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누가 손을 드는지 관심 있게 보았다. 자가용이 있는 사람? 교실 안이 조용하다. 앞자리에 앉아있는 모범생 친구가 손을 들었다. 야! 제네 집 굉장히 부자구나. 아이들은 똥그란 눈으로 그 친구를 바라보았다.
손을 든 아이는 자랑스러웠을까. 도대체 이런 질문하고 학교생활 하고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건지. 개중에는 한 번도 손들지 못한 친구도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을 학교에서는 왜 헤아리지 않았는지. 어떤 통계를 위한 것이었겠지만, 비밀로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러한 잡다한 질문을 해서 개인의 가정형편을 파악했다고 무슨 장학금을 준 적은 없었다.
중학교 등록금 내기도 벅찬 시절이었다. 선생님은 일일이 아이들에게 등록금을 언제까지 낼 수 있는지 묻고 그 날짜를 기록해 두었다. 나는 한 번도 등록금을 밀린 적이 없다. 아버지는 항상 제때 등록금을 준비해 주셨다. 자식 다섯 모두를 그렇게 키우셨으니 얼마나 노고가 심하셨을까, 이제야 그걸 깨닫는다. 마감일까지 등록금을 못 낸 내 짝이 교무실에 불려갔다 돌아와서는 책상에 엎드려 얼굴을 묻었다. 공연히 내가 미안해 시무룩해지고. 선생님 고충도 크셨을 것이다. 선생님은 또 교장 선생님에게 채근 당하셨을 테니.
어느 날 어머니는 이모네가 쓰던 냉장고를 들여놓으셨다. 키가 작은 아이보리색 미제 냉장고였다. 지금 시애틀에서 내가 쓰는 월풀 상표가 아니었을까. 여름에 수박 먹을 때면 얼음 가게 가서 새끼줄에 묶인 얼음 덩어리를 사 왔다. 그것을 송곳을 대고 망치로 살살 두드려 깨서 수박 화채를 만들었다. 더는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냉장고에서 얼음이 나온다. 그런데 이 냉장고는 얼음 얼리는 칸 바깥까지 얼어붙어 가끔 얼음을 손으로 떼어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중고니까. 그래도 나는 이제 ‘냉장고 있는 사람’ 하면 손들 수 있다.
집에 전화를 놓은 건 한참 후였다. 어머니는 마루에 두꺼비같이 납작 엎드려 있는 까만 전화기를 두고 흐뭇해 하셨다. 나도 어디 전화 걸 때가 없을까 생각하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에게 용건도 없이 전화해서 그 친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동네 약국 옆에 붙어있는 공중전화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정말 편하고 뿌듯하다. 가끔 이웃집에서 전화를 빌리러 오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좀 흐르니 이것도 불편하다. 마루에서 통화하면 다른 식구들이 내 이야기를 다 엿들을 수 있다. 그렇다고 매번 전화기를 끌고 내 방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몇 번 억지로 줄을 당겨 방안으로 전화기를 가지고 들어가 보았지만 비밀 유지는 어려웠다. 그럴수록 어머니의 귀가 내 쪽으로 열려 있으니.
시애틀에 살면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지만 ‘가정환경 조사서’ 같은 건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 우리 집 아이는 친구 아버지 직업을 넌지시 물어도 발끈한다. 그런 걸 왜 묻느냐고 내게 무안을 준다. 내가 그렇게 컸기 때문이란다, 아이야. 너는 좋겠다. 그런 스트레스 안 받고 학교 다녀서. 사실 그게 무슨 대수냐. 집에 텔레비전이 있든지 말든지. 그냥 그럴 때가 있었다. 텔레비전을 가지고 그 사람의 가정형편을 가늠해 보던 시절이. 그런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자산인데 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질을 조사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2012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