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 신혜원
어느 초 여름날이었어요.
우리 팀들은 모두 신부가 될 처녀 파티에 불려나가게 되었지요. 그 날 초대받은 손님들은 신부가 좋아하는 오렌지색 옷을 입고 행사장에 참석했답니다. 함께 따라온 아기들조차도 오렌지색 셔츠를 입고 귀여운 모습으로 인사를 하며 서로 반가워했지요. 큰 홀 안에는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풍선과 꽃 장식이 실내를 돋보이게 했어요. 신부의 친구들이 손수 구운 맛있는 쿠키와 간식, 그리고 각종 음료수도 예쁜 크리스털 접시와 잔에 준비되어 있었고요. 달콤한 냄새가 실내에 은은히 풍겨오는 분위기 속에 푹 젖어들어 음미하니 제가 별세계에 온 것 같았어요.
행사가 무르익을 쯤에 네 명의 아가씨가 앞으로 불려 나가더니 신부가 입을 흰 드레스 콘테스트를 하는 거예요. 그 드레스의 재료가 바로 저를 포함한 우리 일행이었어요. 앞에 서 있는 그 네 명의 처녀 몸에 우리를 이용해서 열심히 신부 드레스를 만들어 입히는 경연이었죠. 나 역시 무척 바쁘게 움직여졌고 그들은 내 몸을 풀어 그녀의 몸을 둘둘 감아 옷을 만들어 입히고, 머리에는 잰 솜씨로 꽃을 만들어 꽂아놓았지요. 주어진 시간 안에 재빠른 손놀림으로 내 몸을 풀어 그렇게 많은 양이 다양하게 사용되었기에 저도 깜작 놀랐답니다. 나는 숙녀의 향기로운 몸 냄새와 보드라운 살갗을 느끼며 온 몸을 감고 늘어뜨려진 긴 드레스가 되었어요. 머리 위까지 올라가 고운 화관이 되기도 했고요. 그뿐이 아니라 아름다운 부케가 되어 그녀의 손에 안기기도 했지요. 지금까지 상상조차 못했던 황홀하고 신비한 신분상승이었답니다.
드디어 한 사람씩 심사를 받게 되었지요. 어느 옷이 신부에 가장 잘 어울리고 아름다운지를 뽑아 시상을 하게 되는데 바로 제가 뽑히게 된 거예요. 저를 옷감 재료로 사용해서 만든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는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신부가 되었어요. 그녀는 가장 잘 어울리는 화관을 머리에 쓰고 손에는 예쁜 부케를 들고 있었지요. 저와 함께 한 팀의 친구들과 저는 우리의 몸이 온통 빛나는 옷과 꽃으로 꾸며져 사람 앞에 서게 된 기적 같은 일에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댔고 모인 관객들 역시 박수를 치며 환호했어요. 저는 기뻐서 눈물이 다 나왔어요. 황홀감에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지요. 이런 날이 내게 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거든요. 꿈을 꾸는 것 같았어요.
저는 항상 어둡고 후미진 구석에 방치되어 기다리는 삶을 살았지요. 유일한 호출은 남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뒤처리 일이죠. 누군가의 오물과 배설물을 받아내고 닦아서 청결하게 처리해주는 일이 어찌 쉽고 재미있겠어요. 그 뿐인가요?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나를 꺼내서 이리 저리 던지고 굴리며 깔깔대기도 했답니다. 어떤 이들은 나를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마구 눌러대며 근육 운동에 사용하기도 했어요. 한때는 내가 왜 그렇게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지 너무도 속상했어요. 내가 울면 아무도 내 눈물을 닦아주지 않을 것 같아 마냥 슬퍼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게 나인걸 어쩌겠어요. 그래도 감내하고 소신껏 살아야했던 옛 생활을 억울해 하지는 않아요.
오늘은 이렇게 살아온 내게 음지에 햇볕 드는 날이 꿈처럼 찾아왔던 것이지요. 잠시나마 다른 세계를 구경하며 맛보았던 것입니다. 그런 화사한 잔치에 늘 참석할 수는 없지만, 잠시의 외출로 나 아닌 내가 되어보았던 값진 경험은 잊을 수가 없었어요. 나를 사용하는 주인에 의해 언제 어떤 계기로 어떻게 쓰임이 할당되느냐에 따라서 살아가는 길이 이렇게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되었답니다.
제 자리에 돌아와 보니 전 그저 두루마리 휴지일 뿐이지요. 그 본분 한 순간도 잊지 않아야 하고, 적시적소에 놓여 최선을 다하다 사라져야 하는 제 숙명을 이제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를 만든 주인이 나를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와 의미도 달라지므로 받아들이는 나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잠시의 색다른 외출이 환상적이던 혹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어도 말입니다. 지금도 저는 여전히 저입니다.
너무 재미 있는 이야기네요.
이젠 두루말이 휴지를 막 보지 말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