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인의 눈빛 / 이정림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내 생에서 그렇게 많이 내리는 눈은 처음 본 것 같았다. 어렸을 때 가설무대에서 하는 연극을 본 일이 있었는데, 눈을 내리게 하는 소품 담당자가 졸다가 그만 바구니를 밑으로 떨어뜨린 일이 있었다. 그해 겨울은 마치 하늘의 어느 분이 실수로 두고두고 내릴 눈을 한꺼번에 떨어뜨리는 것처럼 연일 폭설이 내렸다.

50대의 나는 뜨뜻한 방 안에서 겨울을 보내기에는 젊어서, 문우 몇 사람과 함께 설악산으로 갔다. 첫날 오후, 우리는 숙소에다 짐을 부리자마자 신흥사로 올라갔다. 그러나 지금 생각나는 것은 천년 고찰의 웅장한 모습이 아니라, 무릎까지 푹푹 쌓이는 눈을 헤치며 간신히 걸어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눈만 감으면 눈이 마구 퍼부어 내리는 마당에 떨며 서 있는 것 같았고, 심지어는 천장에서까지 눈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환각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다음 날 의상대義湘臺로 가기 위해 자동차를 전세 냈다. 그날은 전날보다 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설이 내려 도시가 온통 회색빛이었는데도, 운전사는 못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동차도 사람도 모두 제정신이 아닌 듯싶었다. 그런 날에 무슨 구경을 하겠다고 아이젠까지 챙겨 신고 길을 떠났으며 그런 날에 돈을 얼마나 벌겠다고 운전대를 잡는단 말인가. 내가 의상대로 가자고 했던 것은, 마룻바닥 밑으로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그 장관을 다시 내려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호등이 제 기능을 못하니, 차들은 뒤엉켜 도로에 엉거주춤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리는 눈 만큼이나 무거운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보다가 밖에 있는 어떤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 사람은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여인이었는데, 은행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고개까지 젖히며 차 속의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여인의 옆에는 남자들이 서너 명 있었고, 여자는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그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아니, 두 손을 공손히 모은 것이 아니라,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옷은 수인囚人들이 입는 바지차림이었다.

쳐다보는 여인의 시선이 핀처럼 내 마음에 꽂혀 나는 순간 몸이 굳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여인은 왜 나를 그렇게 쳐다보았을까. 여인이 그 눈빛으로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날 우리는 결국 쏟아지는 눈 때문에 의상대에 가지 못했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모두 통제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차선이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어 우리를 다시 숙소로 데려다 주었다.

그 후로 나는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그 여인이 떠올랐다. 그 여인은 무슨 죄를 저질렀을까. 그날 현장검증을 하러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 시절, 내가 즐겨 부른 노래는 윤심덕의 <의 찬미>였다. 그날 눈 때문에 차 속에 갇혀 있었을 때도 나는 그 노래를 불렀었다,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러 왔느냐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윤심덕은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한 고뇌 때문에 이 노래를 마지막으로 취입하고 애인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이바노비치의 <다뉴브 강의 잔물결> 곡조에 윤심덕이 직접 가사를 붙였다는 이 노래 속에는 두 연인의 비극적인 죽음이 암시되어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눈치 챈 사람은 없었다. 피아노 반주를 한 동생까지도.

시대를 앞서 갔던 예술인이나 지식인들은 봉건적인 인습의 굴레 앞에서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따. 그게 어디 윤심덕뿐이었으랴. 외간 남자와의 염문으로 가정이 파탄된 나혜석이 그랬고, 스물세 살이라는 나이에 두 번씩이나 혼인을 하고도 영원한 사랑을 찾지 못해 승복을 입어야 했던 김일엽이 그랬지 않은가.

그 당시 나는 남에게는 보이지 않는 병을 속으로 앓고 있었따. 보이는 나와 보이지 않는 나와의 이중성에 괴로워하고, 채울 수 없는 욕망의 허기 때문에 허무해하면서 염세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설악산에서 돌아온 후, 나는 더 이상 <사의 찬미>를 부르지 않았다. 부를 수가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그 여인의 눈빛에서 어떤 답을 찾아내려 애쓰던 어느 날 섬광처럼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후회'였다. 그래, 그 여인은 후회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수갑을 찬 인생,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렇게 살아버린 자기 인생과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자신에 대해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후회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그 여인이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은 당신도 나처럼 후회하는 삶을 살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 것은 내 마음이 결정한 결과들이 후회가되어 나를 힘들게 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윤심덕은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 불꽃처럼 자기 인생을 버렸지만, 그에게도 왜 일말의 후회라는 것이 없었을까. 축복받지 못하는 사랑에 연연하지 않았더라면, 성악가로서 화려하게 일생을 마칠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는 자신의 선택 앞에 모든 것을 버렸다. 그가 버린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해도 그의 내면 깊숙이 자리했을 고뇌와 절망과 아픔은 아무도 모르는 후회가 되어 자신을 짓누르지 않았을까.

후회는 그 앞에 주눅 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그 후회와 함께 자신도 소멸해 버리든지, 그 후회의 손을 잡고 용감히 일어서든지, 이제 나는 그 여인의 눈빛에서 자유롭다. 그 해 겨울, 그 눈 속에 <사의 찬미>를 버리고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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