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둥지 부부의 식생활
최 숙희
내가 일하는 근처에는 점심을 먹을 식당이 마땅치 않아 매일 도시락을 싼다. 혼자인 아침시간을 느긋하게 즐기며 여유를 부리다 반찬을 만드니 어느새 출근시간이다. 뒷정리를 못하고 집을 나선다. 저녁식사 후 내가 스포츠센터에 운동을 가는 동안 남편은 설거지를 한다. 아침은 오트밀이나 과일을 간단히 먹고 점심, 저녁 두 끼는 내가 하니 설거지는 그가 하는 걸로 몇 년째 역할 분담을 해왔다. 어느 날 남편이 두 명 사는 설거지가 많다며 불평이다. 남자는 시금치나물 한 가지 만들 때도 데치는 냄비, 무치는 대접, 담을 접시, 세 가지 종류의 식기가 필요한 것을 모른다. 도시락 반찬통은 뚜껑까지 있다는 것을 설명하며 이해시키기는 번거롭다.
‘오늘은 또 뭐 해 먹나’의 아이디어도 고갈되고 갱년기의 귀차니즘도 맞물려 어떡하면 한 끼 때우나를 궁리한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남이 해준 밥’이라는 말이 공감되는 요즘이다. 노랗게 꽃이 핀 브로콜리나 좀처럼 시들지 않는 비트도 말라버린 채 냉장고 구석에서 나온다. 둘만 있으니 많이 먹지 못해 장을 봐서 해먹는 비용보다 외식을 하는 것이 더 저렴하고 설거지의 수고도 없다며 외식을 꺼리는 남편을 설득한다. 맛집을 검색하면 불경기 탓인지 쿠폰도 많이 있다. 평소에 시키지 않던 애피타이저와 디저트를 공짜로 먹거나, 한 가지 메뉴와 음료 두 잔을 시키면 두 번째 메뉴는 공짜 또는 반값에 제공받기도 한다. 안 가본 식당을 순례하며 데이트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덤이다.
아무리 맛있어도 외식은 질리게 마련이고 손님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양념을 쓰니 과도한 나트륨섭취가 염려된다. 건강이 걱정돼서 밀키트(Meal Kit)를 신청해 보았다. 매주 업데이트되는 여러 가지 메뉴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식재료와 레시피를 배달해주어 집에서 요리해 먹는 방식이다. 재료와 포장은 기대이상으로 훌륭하다. 풀을 먹여 키운 고기, 유전자를 변형하지 않은(NON-GMO) 농산물, 유기농스티커가 붙어있다. 두 사람 식사 총 여섯 끼에 60달러이고 첫 주문은 30달러 디스카운트가 되어 간단한 셈법으로도 5달러에 한 끼가 해결된다. 두 번째부터는 일인당 10달러, 순두부 한 그릇도 15달러인 요즘 물가로 보면 남는 장사이다. 현지농장의 최상급 재료가 중간상인을 배제한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되며 꼭 필요한 양이 배달되므로 음식쓰레기도 안 생긴다고 광고한다. 스텝바이스텝의 요리법 설명이라 초보자도 쉽게 따라할 수 있다. 특별한 양념의 중동식 닭고기, 셀러리와 방울양배추가 들어간 스파게티 조리법도 새로 배웠다. 남편과 같이 요리하는 시간도 재미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구수한 된장찌개와 얼큰한 김치찌개 없이 못 사는 토종 입맛 때문에 밀키트를 매일 먹을 수는 없다.
아이들이 같이 살 때는 음식준비에 공을 많이 들였다. 먹는 것을 챙기는 것이 내 역할이려니 했다. 한국마켓과 미국마켓을 두루 다니며 장보고 재료를 다듬어 음식 만드는 것을 수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부만 남아 부엌일이 훨씬 수월해진 요즘, 너무 편하게만 살려고 요령과 게으름을 피웠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건강에도 좋고 질리지 않는 ‘아내의 집밥’ 이라는 남편을 위해 한 시간만 더 일찍 일어나자. 부지런해지자.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8/03/05
Meal Kit, 좋은 아이디어네요. 건강 지키는 식생활도 되겠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