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발걸음/신혜원

 

   지난해에 낯선 아가씨 이름이 아들 입에서 흘러 나왔다. 결혼 얘기만 나오면 안하겠다고 발뺌하며 내 입을 다물게 한 큰 아들이다. 결혼 적령기의 아들이 사귀는 애가 있다는 소식에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보고 싶으니 무조건 데리고 오라고 당부했다.

 

   나는 소냐를 보자마자 너무도 예뻐서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보듬었다. 아들만 둘을 둔 엄마로서 부드러움이 감도는 가냘픈 여성적 분위기에 순간 흠뻑 빠졌던 모양이다. 남편과 아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녀가 돌아간 후 처음 온 아가씨의 얼굴을 만지다니 큰 실례를 한 것이라고 나는 혼쭐이 났다. 머리도 만지면 안되는데 강아지도 아니고 어린애기도 아니라나.

 

   참 이상한 일이다. 몇 주 후 그녀가 또 보고 싶어졌다. 소냐가 우리 식구가 되려고 그랬는지 아들이 선택하고 좋아하는 아가씨라 덩달아 그런지 언제봐도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매일 주고받는 전화나 화상통화까지 그 둘 사이는 점점 더 돈독해져갔다. 그들의 교제가 무르익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즐거웠다. 소냐의 부모님은 화통하여 아들과도 어색함이 없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아들에게 별로 해준 것이 없었던 나는 그의 결혼 자체가 큰 축복으로 다가왔다. 안사돈의 '대박'이란 말이 점점 이해가 되었다. 비싼 학비들여 공부 시키고, 고이 키운 딸이 짝을 만나 떠나게 되니 그 딸을 맞이하는 신랑은 대박을 터뜨린 반면 시집보내는 부모님의 마음은 빈 둥지의 서운함이 얼마나 크겠는가. 거기에 비하면 나의 아들은 지금까지 거저 자라주었고 모든 일이 은혜로 덧입혀졌으니 미안함과 감사함이 넘쳐 자꾸 눈물이 흐른다.

 

   올 늦은 봄, 둘의 결혼은 간소하고 조촐하지만 아름다운 예술이었다. 주인공들이 1년 동안 꿈꾸며 치밀한 계획하에 열심히 준비한 흔적이 보였다. 어떤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경제적이면서 독창적이고 이국적인 결혼식이었다. 청첩장, 화환이나 촛불등은 생략하고 미국생활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축제 분위기였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모든 결정을 했던 옛날 한국에서의 나의 결혼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래도 젊은 남녀가 계획하고 의견을 모아 애쓰면서 나름대로 결혼의 의미를 살려 잔치를 베풀어 준 일을  보면서 내내 기쁘고 흐뭇했다.

 

   몇 주 후 아들 내외가 양가 부모와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맛있는 이태리식 저녁식사와 한국식 전통 찻집에서 후식까지 나누는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점점 가까워지는 분위기를 느끼며 얘기 하는 중 안사돈과는 여학교 동문임을 알게 되었다. 부부로 맺어진 자녀들 덕에 사돈 부모들 역시 한 가족이 된 것도 신기한데 동창이라니. 게다가 우리 둘째 아들과 소냐의 여동생과도 대학 동문이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이중 삼중 축복의  인연이란 말인가!

 

   아들의 결혼식, 조용하고 반짝이는 발걸음이 걸어 들어온 대사로 인해 우리가족 지도가 환하게 변하고 있다. 설렘과 기대로 찬 젊은 부부가 이제 타주로 옮겨가 살게 된다. 내일을 향해 전진하는 그들의 날개짓이 이렇게 대견하고 벅찰 수가 없다. 얘들아, 기왕이면 서로 '당신으로 인해 내가 대박입니다'라고 고백하며 가거라. 그래서 너희의 발걸음이 어디를 가든지 빛나기를......



<재미수필 16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