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예찬

김석연

    근래들어 한류와 더불어 막걸리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정말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술이 막걸리일 거라는 확신이 생긴다. 막걸리만큼 일반화 되고 사랑받아온 술이 없기 때문이다.

    막걸리도 있고, 양주도 있고, 배갈에, 소주에, 포도주도 있다. 그중에 포도주는 건강에 좋다고 말들을 하지만 막걸리에 비하면 어림 반푼어치도 못된다. 우리 선조들은 포도주 뿐 아니라 각종 과일주에 약재를 이용한 건강주, 꽃들을 이용한 두견주,  360여가지나 되는 술을 빚어 왔으나 일제 강점기 때 세수룰 위하여 탁주(막걸리), 약주, 소주로 단순화 했다고 한다.

    나는 체질상 술을 못한다. 조상탓인 것 같다. 내 술실력으로 말하면 고작해야 막걸리, 와인 등은 소주잔 하나면 족하고 하드 리커는 냄새만 맡아도 얼큰히 취하는 위인이다. 이런 주재에 막걸리 타령을 하다니 좀 쑥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막걸리 하나만큼은 일찍이 도통했다. 그 때가 9살 쯤인데 어느 가을 동네에 잔치가 열렸다. 꼬맹이 주제에 떡 버티고 앉아 대접 받을 형편도 못되고 그렇다고 방구석에 혼자 죽치고 앉아 있을 수도 없고 그래서 잔치집 마당을 빙빙 돌며 서성이고 있는데 바로 눈 앞에 술독이 보이는 거라. 어른들이 그렇게도 좋아하고 애음을 하는 막걸리가 눈 앞에 있으니 회가 동할 수 밖에. 에라 모르겠다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나도 한 번 먹어보자 하고 한바가지 마셔보니 달착지근한게 감칠맛이 나는 거라. 어른들 눈을 피해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마침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며 하늘이 돈짝만 한게 빙글빙글 도는데 기분이 알딸딸한 것이 세상이 만만해진다.

    술에 취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이대로 쓰러지면 안되지 하고  이를 악물고 기를 써서 근처에 있는 집가까이 가서 정신을 잃었다.

    날이 저물었는데도 아이가 들어오지 않으니 온집안에 비상이 걸렷다. 꿈속을 헤메고 있는데 누가 흔들어 깨어 눈을 떠보니 머슴이 한심한 듯 내려다 보고 있다. 머슴 등에 업혀 안방 아랫목에 뉘였는데 어찌나 춥든지 솜이불을 푹 뒤집어썼는데도 몸이 사시나무 떨 듯 했다.

    삼일 밤 낮을 대취했었으니9살 약관에 막걸리 하나만큼은 도통한 셈이다. 그 이후로는 막걸리 잔만 봐도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나 막걸리 도사의 면모를 잃지 않고 지내고 있다.

    우리집은 대농이었기에 일년 내내 막걸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 막걸리 담그는 심부름을 내가 했었기에 이젠 막걸리 담그는 기술까지 연마하여 막걸리 기능공까지 되어버렸다.

    막걸리 담글 때 아버지께선 늘 고삼 뿌리를 넣으셔서 다른 집 막걸리에 비해 무지무지하게 썼다.

그러나 이 고삼 막걸리를 마시고 나면 고장 났던 위가 말끔이 나아버리니 우리집 막걸리는 약주 중에 약주가 됐다. 막걸리 기능공에 막걸리 담그는 비법까지 숙달했으니 내 어찌 막걸리 예찬을 빼놓을소냐.

    막걸리는 다름 술과 달리 열량 뿐아니라 영양가가 높아 끼니를 이을 수도 있고 단순히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술의 차원을 넘는 데다 그 이름이 다양한 것으로 보아 술중에 으뜸으로 예찬 받을만하다. 맥주는 오징어에 땅콩을 곁들여야 제맛이 나고 양주는 치즈와 같이 먹어야 위가 손상 되지 않지만 막걸리는 텁텁한 맛이 시골영감 대하듯 친근감이 드는데다 한 대접 들이키면 한끼 요기가 훌륭하고 안주래야 김치쪽이나 풋고추 하나면 훌륭하다.

    막걸리는 껄죽하고 탁하다하여 탁주요, 농사지을 때 새참으로 제격이기에 농주요, 집집마다 담가먹으니 가주요, 인목대비의 어머니가 유배지에서 술지개미를 재탕하여 팔아서 연명했기에 모주요, 강화도령이 임금되어 궁중에서도 마심으로 온국민이 다 함께 먹는 국주요, 막걸리 항아리에 용수를 밖아 맑은 술을 떠내면 약주요, 생리학적으로 봐도 유산균 덩어리에 아미노산 범벅이니 약 중에 약주인 것이다. 막걸리 이름이 이와같이 다양하니 막걸리 자랑 늘어 놓을 만하지 않은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아니지만 쓸개를 소주, 약주, 막걸리에 담갔다가 3일 만에 꺼내보니 소주에 담근 쓸개는 구멍이 났고, 약주에 담근 쓸개는 종이장처럼 얇아졌는가하면 막걸리에 담근 쓸개는 더욱 두꺼워졌단다. 소주, 양주는 위에 구멍이 나고 맥주는 호프 때문에 정력이 떨어지는가하면 요산이 쌓여 통증이 생기지만 막걸리는 마시면 마실 수록 건강해져 무병 장수한다.

    영국은 해마다 위스키를 4억 6천만병을 외국에 팔아 부를 누리고 프랑스는 매년 20억 병의 포도주를 팔아 엄청난 부를 누린다.

    농수산부 조사에 의하면 쌀 10kg을 팔면 1만원에 불과하지만 막걸리를 만들어 팔면 21만원의 부가 가치가 된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우리의 전통주가 왜 세계화 되지 못했는지 아쉽기만 하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도 신라주(막걸리)를 그리도 칭송했으니 우리 국주 막걸리를 많이 선전해서 돈도 벌고 국위 선양도 했으면 좋겠다.

    김치, 막걸리, 고추장, 된장, 이것만 가지면 무병 장수할텐데. 아미노산 덩어리 유산균 막걸리 장복해서 너도 나도 건강하자.  

<재미수필 12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