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도량
김석연
요즘음 나의 일상의 우선 순위가 텃밭 가꾸기다. 이것은 단순한 가꾸기가 아니라 내 마음의 수련장이다. 이 수련장을 통해 내 속의 의미와 보람을 찾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철학이요 수양으로 삼고 있다.
이름이 텃밭이지 밭 수준은 아니고 손바닥 만한 뜨락에 불과하다. 너무 적기 때문에 먹거리에 가장 중요한 열무, 배추도 못심는 형편이다. 고작해야 토마토, 가지, 고추 몇 포기, 상추 푸추 정도지만 나에게는 대단한 중요로움이다.
흔히들 말하기를 물값 계산하고 노동 시간 계산하면 영 채산이 맞지 않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치부한다. 사실 물값이 얼마가 드러가는지 모르지만 가끔 이게 물값이나 될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난 이 바보짓을 이윤을 계산하는 Labor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더구나 취미라든가 먹기 위해서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이것을 내 마음의 안식과 수양의 도량으로서 내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아주 신성한Work로 알고 정성을 다한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Good Morning하고 나를 반겨 주는게 텃밭이요 외출했다 돌아올 때도 텃밭을 외면하고 그냥 집으로 들어가는 법도 없다. 밤에 잠들었다가도 몽유병 환자처럼 휙 한바퀴 둘러 보는 곳이다. 이런 자연은 시비가 없고 수작도 없고 고요하고 평온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적막한 것은 아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시달리는게 스트레스란다.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드는 스트레스에 부데끼다 성인병으로 고생을 한다. 이렇게 어느 한 곳에 정성을 쏟는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기 더없이 좋은 일이다. 아무리 큰 걱정거리도 앞뜰에 너울대는 온갖 것들과 눈맞춤을 하다 보면 싹 달아난다. 잡념이나 근심 걱정이 파고들 틈새가 없으니 이보다 좋은 수양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 이 텃밭은 나의 최고의 도량인 것이다.
잡풀을 뽑아 주고 물도 주고 꽃피는 모습이며 열매 맺는 모습을 들여다 보노라면 원예 삼매경에 이른다. 이런 기분 천 만금 준대도 살 수 없다. 생명의 신비로움을 깨닫게 하는 철학이 여기있다.
자라고 꽃피고 열매 맺는 이 모든 것이 위대한 자연의 순리며 예술이다. 날마다 이런 장엄한 예술에 심취하다 보니 마음이 맑아질 수 밖에 없다. 그뿐아니라 싱싱한 것들을 조석으로 대하다 보니 Fast Food 가공식품으로 찌든 오장육부가 살아나는 기분이요 마음마져 풋풋해 진다.
감정을 조절하는 기능이 마비되고 정서가 메말라 버려 단세포적인 행동과 감정의 춤을 추는 판에 이 강팍한 내면을 나긋나긋하게 녹여줄 용제가 이 텃밭 가꾸기다.
텃밭 가꾸기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대 예술이요, 철학이며, 도의 행함이요, 생명의 샘이다. 지리산에 들어가 10년을 도를 닦아도 이룰가 말가한 도의 경지를 나는 이 텃밭에서 횡재한 셈이다.
텃밭 가꾸기는 수작이 없다. 자연 그대로다. 수작이 없으니 군살이 찔리가 없고 수작이 없으니 삐쩍말라 비루먹을 일도 없다. 자연을 보라. 살이 너무 없어서 병들어 죽은 동식물 없고 살이 너무 쪄서 날다 떨어져 죽은 새도 없다. 오직 사람만이 살이 너무 쪄서 죽을 뿐이다. 건강해야 한다면 운동도 하고 육식에 보약까지 포식해서 기름기가 번지를 흐르는 육신을 우유로 목욕하고 향수를 뿌려대는 일들은 그 육신이 잠시 빛날지 모르지만 그 마음 속까지 정화 되지는 않는다.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건강하려면 흙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꼭 황토 흙이 아니라도 좋다. 흙을 밟으면 대지의 정기가 몸안에 가득찬다. 음이온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하지만 그것 다 부질 없는 짓이다. 맨발로 맨 땅을 밟고 서성여 보라. 육신만 건강해지는 게 아니라 정신까지도 한결 맑아 진다.
<재미수필 11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