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의 요리>
“임 없는 밥은 돌도 반, 뉘도 반”이라는 속담이 있다.남편 없이 혼자 지낼때는 먹는것에 정성이 들여 지지 않아 잘 먹지 않고 산다는 뜻이다.
T.V앞에 앉았다 하면 쉐흐들의 음식 만드는 채널을 트는 아내는 요리와 사랑에 빠진지 오래다. 나는 한국정치 뉴스에 정신이 팔려 있다. 정치가 좋아서가 아니라 나라가 걱정이 되서 그런거 아닐가. 변함없이 오늘도 아내의 투석 시간은 닥아온다. 하루 걸러 투석을 하다보니 매일 투석하는 기분이다. 당사자는 얼마나 힘들가. 본인 말은 하루만 고생하면 다음날 하루는 편안한 생활을 할수 있으니 매일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라고 스스로 위로 하며 버텨 나간다. 역시 신앙의 힘이 큰 힘이 되어 주는것 같다. “여보 우리 앞으로 투석하라 간다고 하지 말고 운동하라 간다고 합시다” 라고 말했더니 아내는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라고 대답한다. 잠시후 운동 준비를 해놓고 나는 <다비타>를 나왔다. 늘 따뜻했던 로스앤젤스도 겨울은 겨울 인가 보다. 스치는 아침 공기는 차갑기만 하다.
새벽 6시가 다 되어도 태양은 잠들어 있는지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만 번쩍이고 시야는어둡기만 하다. 아마 동지 섯달 깊은 잠자리에 있는 아이들이 엄마가 어서 일어나라는 외침도 못들은척 꼼지락 대며 따뜻한 이불속에서 바시락 되는 어린 아이들 처럼 태양은 아직도 이불속에 서 체온을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아내는 <다비타>로 향할때 느닷없이 옆에 탄 아내는” 여보 이제 몸이 어지간 하니 내가 운전하고 갔다 올터이니 당신 아침에 실것 자구려.나때문에 잠도 못자고 “ 하며 미안한 어조로 이야기를 건넸다.나는 즉시 “아이 무슨 소리야 , 말도 안되는 소리 내가 뭐 하는게 있어, < 다비타>가 집에서 가까우니 얼마나 다행이야. 말도 안되는 소리. 같이 왔다 갔다 하는것으로 당신을 위로 해주는일 밖에 내가 할수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하고 넘겼다.
아내는 투석하는 날에는 온종일 힘들고 속이 미식대고 피로하고 안정이 않되고 몸을 어떻게 가누어야 할찌 초조하고 안절 부절이다. 신장 전문의는 통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니 그저 마음만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은 좀 괜찮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휘트니스로 향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뛰면서 기도 하였다. 온갖 잡생각 다 저버리고 오직 하나님 “고처주세요, 고처주세요” 반복 후령을 붙여가며 떼를 쓰면서 <중얼기도>를 했다. 한동안 뛰다보니 온몸이 가벼워 진다. 한참 뛴것 같은데 15분 밖에 되지 않았다. 하나님 Impossible이 I’am possible로 점 하나 찍고 한간 띄우면 기적이 일어 날것이 아닙니까. 언젠가는 해 주시 겠지요. 앞만 보고 뛰어간다. 시간은 잘안간다. 숨이 차다. 30분 정도 뛰엇을까 땀이 온몸에 촉촉히 젖어온다. 기분이 찜찜 하면서도 상쾌하다. 가슴이 절로 펴지고 기운이 솟아 나는것 같다.
이제 나는 아침식사를 위해 어디론가 가야 한다. 맥카페에서 양식을 할것인가 ,집에 가서 마겥에서 사다 놓은 남은 팥죽을 먹을 것인가.이렇게 스스로 먹을 것을 정해야 하고 찾아 가야하는 상황은 거의 없었다.자랑도 아니고 바보도 아닌 그냥 그렇게 살아왔다.
직장 생활에서도 동료가 어디 맛있는것 있으니 먹으러 가자고 하면, 야 아무거나 먹지 그 먼곳을 뭐하라 가냐고 핀찬을 주었다. 그러니가 어디가면 맛있다 는 소문을 들어도 맛있는 곳을 찾아 간적은 평생에 거의 없는것 같다.
어머니가 주면 주는대로, 아내가 해주면 주는대로 짜고 맵고 문제가 안된다.싱거우면 소금타고 짜면 물타고 일단 음식놓고 상앞에서 이렇쿵 저러쿵 잔소리는 한적이 없다. 아마 어렸을때 할아버지가 점심 식사 시간에 할머니가 뭘 잘못 했는지 밥상이 날라가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래서 그럴가 아니면 타고난 성품일가. 아무튼 그런 습관이 생겨났다. 캠핑 가서도 찌게 잘끓이는 친구가 있어 손도 못대게 하고, 군에 입대 해서는 전방 소대장이라 중대 인원이 160명이나 되는데 음식을 만들 기회란 전연 없었다.
지금도 딱가리에다 더덕 요리를 정성것 만들어온 김일병 전령을 잊을수가 없다. 고향이 춘천아라 하더구먼. 사회 나와서야 수출 드라부 정부 정책에 편승한 각 무역회사들은 비상이 걸려 물건 하나라도 외국에 수출 하느라 쫓기다 보니 아내가 해주는 밥 먹고 다녔으니 무슨 요리를 스스로 만들겠는가.
우리 세대에는 아내들이 집에서 살림을 했으니 그럴수 밖에 없었 으리라 생각된다.
옛날 어른들은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조잡 스럽다고 핀찬을 주면서 내쫓았다.
어느 여자든 그렇겠지만 아내는 자기 수고를 통해 요리를 잘 만들어서 남편을 행복하게 하고 그 모습을 모면서 본인도 행복을 느끼는것 같다. 그러니 정성것 해놓은 음식을 탓하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요리를 만든다는 것은 글쓰기와 같은 창작 문학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요리는 만드는 것이 아니고 그리는 것이라고 대장금에서 <한상궁>은 <장금>에게 말한것이 기억난다. 그렇다. 요리를 만든다는 것은 사심과 이기심이 없는 창작품으로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선물 이기도 하다.집으로 차 방향을 돌려 악세레타를 밟았다. 집에가서 아침을 때우자.
아내가 냉장고에 찾기 좋게 놓아둔 먹다 남은 팥죽을 꺼내 따듯하게 데워서 맛있게 먹었다. 앞에 놓여 있는 펜문학상 수상식때 받은 축하 화분에 활짝 피어있는 분홍색의 꽃은 환하게 웃고 있다. 자네는 아직도 씽씽 하구먼. 설거지를 하면서 아아.. 노후에 음식을 홀로 스스로 만들어 먹는 다는것이 정말 보통이 아니라는것을 느켰다. 노후에 집안 살림은 필수적이고 요리 까지 만든다는 것은 노후 대책중 하나이며 필수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도 이시간 이후 부터 맛있는 요리를 스스로 만들수 있는 노인이 되어 보자.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한번 결심해 볼만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