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131년 만에 제일 덥다는 날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일꾼 세 명 중 한 명이 아파 둘만 보낸다는 연락을 당일아침 받았다. 오후에 한 명을 더 충원해주겠다며, 사람이 하는 일이니 이해해 달라는 데 도리가 없었다. 셋이 할 일을 둘이 하니 땀을 비 오듯 흘린다. 얼음물과 수박을 권했으나 에너지드링크를 달란다. 고농축 카페인 음료로 버티는 고단한 삶이 안쓰럽다.

 

렌트 줄 요량으로 작은 타운홈을 샀다. 에스크로가 끝난 후 주인이 최소 2년 거주한 후 렌트줄 수 있다는 규정을 알게 되었다. 그런 조항을 몰랐고 이사할 형편이 아니니 예외를 허가해 달라는 이메일을 집주인 협회(Homeowner's Association)에 보냈으나, 집을 살 때 규칙도 함께 산 것이며 예외 없다는 답장을 받았다. 개인의 재산권을 함부로 침해하는 HOA에 화가 났다. 영어라도 유창하면 HOA미팅에 나가 따지기라도 할 텐데, 이민자의 답답함을 느껴야했다.

 

떠밀리듯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이사를 가려니 짐 싸는 것도 더뎠다. 집 떠난 아이들 물건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가야 할지 알수 없었다. 그것을 없애서 엄마 집이 넓어진다면 없애라는 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우리 집이 아니고 엄마 집이란다. 나는 아직도 자식바라기로 아이들 성적표며 상장, 편지, 그림 등속을 애지중지해왔는데, 서운했다.

 

짐 정리를 하면서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차이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라고 쓰인 기도문을 보았다. 지키라고 만든 규정을 받아들이자. 아이들이 떠난 후 집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은 했으나 엄두를 못 냈는데 잘 됐다 생각하자. 억지로 이사한다는 개운치 않은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자. 상황을 받아들이니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부엌과 화장실이 쌈박하게 수리돼있어 쉽게 세입자를 구할 수 있겠다는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막상 이사를 들어가자니 손댈 곳이 새록새록 나왔다. 부엌과 식당, 패밀리룸 바닥이 핑크색 타일인게 마땅치 않아 마루로 바꾸려니, 같은 재료를 구할 수 없어 집안 전체의 마루를 바꿔야했다. 페인트를 새로 하고 클로짓을 바꾸니 제법 아늑하다. 집수리를 하며 28년 전 신혼집의 도배지를 고르고 커튼을 고르던 생각이 났다. 한때는 부부싸움이라고는 모르는 잉꼬부부였는데, 세월이 흐르며 서로 말꼬리 물고 늘어지는 권태기 부부가 되었다. 아이들 중심으로 살다가 아이들이 빠져나가니 중심을 잃은 수레마냥 삐꺽거렸나 보다. 삶의 중심을 부부중심으로 바꿀 때이다.

 

남편이 역류하는 세탁기를 고쳤다. 20년 미국생활에서 웬만한 집수리는 스스로 하더니 요즘은 유튜브의 도움으로 더 노련해졌다. 항상 아이들에게 밀려 3순위이던 남편, 이제야 앞으로 내 인생에서 누가 제일 중요한지 알겠다. 아직도 풀지 못한 박스가 거라지에 쌓여있다. 남편이 뭘 그렇게 사들였냐고 잔소리해도 말대꾸하지 말아야지. 흐트러진 남편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