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한국 교육원에서 미주문협 정기 이사회를 마치고 나오던 길이었다.
"보고 싶다... 미치도록 보고 싶다..."
어디선가, 김범수의 <보고 싶다> 노래가 들려온다.
음색은 고운데 발음은 조금 서툴다.
호기심이 동해,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니 뜻밖에도 외국애들이 가요 악보를 들고 노래 연습 중이다.
"아니, 어떻게 해서 한국 노래를 연습하고 있죠?"
참새가 방앗간 앞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 기자 출신의 근성이 발동해서 슬슬 인터뷰를 시작한다.
그 중에서 나이가 들고 제법 한국말을 잘 하는 여자애가 답을 한다.
"네, 한국 K-Pop이 좋아서 배우고 있어요!"
생글생글 웃으며 여간 재미있지 않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을 보니, 귀엽고 기특해서 자꾸 말을 붙여 보고 싶다.
"아, K-Pop 경연대회 나갈려고 연습하는 거에요?"
"아니에요. 한국에서 가수 선생님이 와서 우리들이 배우고 있어요. 2주일 배웠는데, 오늘 그룹별 대항이 있어요.
"호오, 그래요? 그런데 왜 그렇게 K-Pop이 좋지요? 멜로디 아니면 가사?"
"아, 다아~ 좋아요! 멜로디, 가사 그리고 춤추는 것도멋있잖아요?"
듣기만 해도 흐뭇해진다.
"그래요, 목소리도 좋고 이렇게 열심히 하면 K-Pop 경연대회에서 우승도 하겠어요!"
내 덕담을 듣고는 우승이라도 한 듯, "와아!" 하고 함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 이 거는 한국 벌써 갖다 왔어요!"
"이 거? 사람은 이 거 저 거 하는 거 아니에요. 이 분 저 분 아니면 이 사람 저 사람. 알겠죠?"
전직 국어 선생 기질이 발동해, 친절히 가르쳐 준다.
"그런데 다들 어느 나라 사람들이죠?"
" 이 거는 멕시코, 이 거는 베트남, 이거는 필리핀, 나도 멕시코!"
" 사람은 이 거, 이 거 하는 거 아니라 했죠? 물건을 말할 때만 이 거 저 거 하는 거에요."
"아,참! 잊었어요!"
"아이구, 잊었다는 말도 알고 한국말을 잘 하기도 하네. 어디서 배웠어요?"
"네, 여기 교육원에서 2년 정도 배웠어요. 저도 한국 가 볼려고요."
얼굴도 다르고 말은 어눌해도 하는 짓이 예쁘고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가 귀엽다.
절로 미소 짓게 한다.
모임 끝나고 남은 물병을 하나씩 나눠주며 다시 한 번 불러보라고 부추긴다.
" 보고 싶다... 미치도록 보고 싶다..."
"이러면 안되지만 죽을 만큼 보고 싶다..."
"잊고 싶다"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하여 잊고 싶다는 고백까지 뱉어내며 감정을 최대로 모아 열창을 한다.
"와아- 오늘 일등하겠어요!"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덕담을 해 주니 나를 덥썩 끌어안고 좋아한다.
가던 길 멈추고, 저희들 노래를 들어주는 내가 좋은가 보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주차장을 가는데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몰려 맹연습 중이다.
K-Pop을 통한 한국 문화가 젊은이들에게 널리 널리 퍼졌으면 한다.
탁구공 앞세워 미국과 중국의 냉전시대를 끝내듯, K-Pop으로 통일의 물꼬를 털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몽당연필 한 자루로 책 한 권 다 쓴다'는 <A Little>이란 시처럼, 큰 일을 이루는 건 굳이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작은 열쇠가 큰 문을 연다.
오늘 따라, 한국 교육원 앞에 성조기와 캘리포니아 주기와 어깨 동무하고 있는 태극기가 더욱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