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길
김화진
집 앞 골목의 포장공사가 한창입니다. 어렸을 때 소위 '타마구'라고 부르던 까만색 아스팔트가 생각납니다. 채 마르기 전 발을 짚었다가는 신발이 달라붙어 애를 먹었을 뿐 아니라 그 위에 내 발도장이 찍혀졌지요. 지금은 반나절 정도 통행을 제한하고 포장을 마치면 바로 다닐 수 있을만큼 재료 개발이 잘된 것 같습니다. 매끈하게 다져진 길은 지난 겨울동안 비에 패진 표면을 고르게 하여 운전하기에도 안전합니다.
포장이 잘된 길만 있을까요.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곳에는 길 자체도 만들어지지 않았겠지요. 숲속에 생겨난 오솔길, 높은 봉우리를 오르기 위해 누군가가 먼저 가본 길은 도시계획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편안한 것과 달리 흙 위에 만들어진 사람들의 발자국일 겁니다.
얼마 전 한국 방문 중에 속초를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대학 시절 학과의 답사여행을 다닐 때만 해도 대관령이나 진부령을 넘으려면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 길을 꼬불꼬불 가느라 모두가 차멀미로 고생을 했습니다. 이제는 태백산맥에 터널을 뚫어 연결한 고속도로가 서울과 강원도를 하루 생활권으로 만들어 놓았더군요.
찻길에 그어놓은 금이 있지요. 4차선 쯤 되는 길에 차선이 없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위험할까요. 오고가는 차들을 위한 중앙선은 정말로 중요하겠죠. 한 방향으로 가는 차들에게도 그 사이를 구분해 줄 경계선이 꼭 필요합니다. 항상 표시되어 있는 길에 익숙한 우리는 그러한 불편함을 떠올릴 이유가 없이 운전을 합니다.
우리의 삶도 오랜 길을 걸어왔습니다. 모두 다른 모양의 길일 겁니다. 넓고 평탄한 길을 별 고생 없이 따라온 사람도, 굴곡이 심한 경사길을 지나며 힘들었던 사람도 돌아보면 열심히 걸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혼자가 아니었기에 지칠 때 서로 위로하고 도와주며 함께 올 수 있었겠지요. 우리 자식이라고 해서 내가 온 그 길을 똑같이 지나진 않지요. 어쩌면 나보다 편안한 길을 가게 하려고 부모는 더욱 열심히 살아낸 것이라 봅니다.
골목길에 일정 간격으로 놓인 플라스틱 조각이 임시로 중앙선 표시를 맡고 있습니다. 곧 지워지지 않을 페인트로 차선을 그을 것입니다. 넓이가 변하지 않았으니 숨겨진 옛 차선의 위치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길인 것은 틀림 없습니다. 차선을 지키고 정해진 속도대로 운전을 해야하는 법규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함께 가는 삶에도 이같은 질서의 기준이 있습니다. 가끔은 이를 무시하고 혼자만의 방향을 고집하다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나이가 들며 생각도 젊었을 때와 같지 않고 인간관계에서도 많은 변화를 느낍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길 위의 파손된 자리를 메우고 포장을 하여 새롭게 금을 그어야 할 일도 생깁니다.
글쓰기를 통해 삶을 나누게 될 만남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 마주친 인연이었습니다. 각자 걸어 온 자국은 덮혀져 볼 수 없어도 새 길 위에 얹어놓은 많은 이야기를 통해 서로의 모습을 느낍니다. 함께 손잡고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격려하고 칭찬하며 사랑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연결되어 재미수필문학가협회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희망을 실어 나르는 문학의 통행로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