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풍경 자체만으로 아름다움은 완성 되지 않는다. 풍경과 사람이 어우러질 때, 그 조화로움으로 아름다움은 더욱 빛난다.
여기, 풍경 사진을 즐겨 찍는 사진 작가가 있다. 그의 풍경 사진 속에는 사람이 늘 배경으로 들어간다. 아니, '늘'이란 부사는 적합하지 않다. '거의'라는 말이 맞겠다. 가끔은 꽃이나 식물들을 찍을 땐 주체를 강조하기 위해 사람을 구경꾼으로 바깥 세상에 잠시 내 놓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늘 어딘가에 한 점 점으로 사람을 세워 두기 좋아한다. 저마다 제 구도를 지키며 한 풍경화를 이룬다.
그의 사진을 보면,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시각적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여운을 가지고 사유케 하는 묘한 마력이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앵글을 통해 작가의 따스한 마음을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는 심심하던 풍경이 그의 심상에 느낌표를 주어 앵글에 잡힌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때 그 시간에 그 곳을 지나는 걸음들이 있다. 아니면, 작가가 그들보다 뒤에 간 경우도 있으리라. 작가는 풍경을 보고 사람을 보고 구도를 잡는다. 결코, 사람을 자연보다 크게 클로즈 업하는 우를 범하진 않는다. 자연 속에 사람은 지극히 미소한 존재임을 알고 있는 거다.
풍경속 인물들은 거의 뒷모습으로 찍힌다. 찍히는 줄도 모르고 찍히기도 했으리라. 그들이 찍힌 줄도 몰랐던 것처럼, 사진을 보는 우리도 영원히 그들의 앞모습을 볼 수는 없으리. 사라지는 것, 멀어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향수를 자아내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는 직선이 아니라, 굽어드는 곡선을 좋아한다. 거기서 나는 느림의 미학을 읽고 여유로움을 읽는다. 조금 돌아가면 어떠랴. 평화로움은 조급함에 있지 않는 것. 그의 사진에서 나는 한적한 평화로움을 맛본다.
풍경도 아름답지만,다정히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더욱 아름답다는 나의 감상평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 풍경 사진에 사람이 빠지면 서운한 느낌이 들어..." 바로 이 마음이다. 내가 20년 전, 이응찬 화백의 그림 전시회에 가서 느꼈던 바로 그 서운함이다.
20여년 전, 샌 앤드류 갤러리아에 달려가 보았던 이응찬 화백 전시회 그림들엔 세필화로 그린 실경만 있을 뿐, 단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았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난 뛰는 가슴 끌어안고 한달음에 갤러리아로 달려가진 않았으리라. 친구 화가라면, "왜 사람 뺐어?" 하고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그는 20여년 전, 그 전시회보다 10년 앞서 삼일당 화랑에서 연 전시회로 내게 큰 감명을 줬던 화백이다. 그때, 나는 우연히 들린 삼일당 화랑에서 그의 그림을 보고 완전히 감전되어 붙박혀 있었다.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보랏빛 야산 속에 계곡물이 흐르고 그 계곡 옆 바위 위에서 지게를 벗어놓고 숨을 고르고 있는 지겟군. 보일락말락 숨은 듯, 조그맣게 그려져 있는 지겟군은 그 풍경화를 살리는 화룡점정이었다. 정말 갖고 싶은 그림이었다.
그 당시 2베드룸 렌트비가 $650일 때 그림값 $1500이라고 했다. 지금 시세로는 $3-4000을 홋가하는 값이다. 내 기자생활 한 달 월급이 $1200 받던 시절이니, 거금일 수밖에. 그땐, 소위 할부라는 페이먼트 종류가 있는지도 몰랐다. 내 목에 걸려있던 $3000 짜리 진주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그저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사랑하는 동생에게 준 언니의 귀한 선물이었지만, 할 수만 있다면 내 목걸이와 그림을 맞바꾸고 싶었다.
이민 온 지, 겨우 일년 남짓 했던 때라, 진달래꽃 보랏빛 야산이 향수를 불러일으킨 연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계곡 옆에서 지게를 내려놓고 쉬고 있는 그 지겟군이 없었다면 그 그림을 그토록 탐하진 않았을 게다. 전시회의 모든 그림들에 보물 찾기 하듯 찾아 보아란 듯이, 한 두 사람이 풍경 속에 숨어 있었다.그때부터, 화가 이응찬이란 이름은 내 가슴에 화석처럼 박혔다. 그러니, 십 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다시 그의 이름을 신문 지상에서 봤을 때 어찌 달려가지 않고 배길 수 있었으랴! 하지만, 십 년 사이 선호도가 바뀌었는지 섬세한 필치로 그린 풍경은 여전한데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는 '텅 빈 공허' 그 자체였다.
이번에야말로, 어떤 일이 있어도 그림 한 점 꼭 사고야 말겠노라고, 그리하여 십 년 동안 가슴 한 켠에 남아 있던 아쉬움을 일시에 떨쳐내리라고 작심하고 달려갔건만. 그때의 허탈감을 무엇으로 표현하랴. 고향에 찾아 와도 옛고향은 아니더라는 심경보다 더 참담했다. 그 이후로, 난 내 가슴 속에서 이응찬 화백의 이름을 아쉬움 없이 지웠다.
오랜 세월이 잊혀진 채로 흘러갔다. 그러면서도 첫전시회에서의 감동을 완전히는 잊지 않았나 보다. 사람과 풍경이 어우러진 조정훈 작가의 사진을 보자, 이응찬 화백의 진달래 야산 그 그림이 다시 떠올랐다.
풍경과 사람. 웬지, '풍경과 사랑'도 나란히 놓아 보고 싶다. 아마도 조정훈 풍경 사진에 나란히 걸어가는 연인의 뒷모습들이 자주 잡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 시간과 공간 속에 있는 두 연인.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머문다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랑을 하고 이어가는 최소한의 필요 충분 조건이 아니겠는가. 시간이 빠지면 사랑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바뀌고, 공간이 빠지면 사랑은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바뀐다.
얼마나 많은 낮과 밤들을 나는 사랑이란 이름 대신, 추억이나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하얗게 지새웠던가. 아마도, 연인과 더불어 한 시간과 공간 속에 있고 싶은 나의 열망이 사람이 있는 풍경화에 더욱 애착을 갖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을 보는 즐거움에 아린 여운까지. 이는, 내게 조정훈 사진이 주는 귀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