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균형 찾기
좀처럼 전화를 먼저 걸지 않는 딸에게 전화가 왔으나 바로 끊겼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다시 걸어보지만 받지 않고 기계음만 들린다. 가까스로 통화가 되어 물으니 집에서 일하며 동료에게 전화한다는 것을 실수로 엄마에게 걸었다나. 어이없을 때 아이들이 자주 쓰는 단어 ‘헐’ 소리가 절로 나온다.
첫 딸을 낳고 어디 하나 흠 없는 완벽함이 신기했다. 이 예쁜 아이의 엄마가 되기 위해 이제껏 살아왔나 할 정도로 행복했다. 질풍노도라는 사춘기를 고요히 넘기고 대학에 가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아이의 직업적 성공을 돕는 것이 엄마의 의무라고 믿었기에 인턴과 취직을 채근하고 닥달하며 매니저역할을 자청했다. 나의 잔소리와 간섭이 지나쳤나, 4년 전 뉴욕의 직장이 되자 뒤도 안돌아보고 집을 떠나 일 년에 두어 번 손님처럼 다녀갈 뿐이다. “바쁘다,” “지하철에서 전화가 안 터진다.”는 핑계로 전화도 잘 안 받고 메시지에 간단한 답만 한다. 멀리 떨어져 살기에 더욱 절절한 그리움과 애틋함으로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하고 하루라도 연락이 안 되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매일 살피며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다가 아이에게서 친구삭제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와 나 사이의 별만큼 아득한 거리가 느껴진다. 엉킨 실타래를 어찌 풀어야하나.
그간 쌓아둔 마일리지가 기간만료로 무효가 된다기에 서둘러 뉴욕 행 티켓을 예약했다. 딸은 프로젝트가 있어 주말 외에는 시간을 못 낸다며 반기는 기색도 없다. 뉴욕 여러 번 와봤으니 혼자 다니란다. 아이집이 있는 브루클린에서 맨해튼 유니언스퀘어까지 가면 뉴욕의 웬만한 곳은 다 전철로 연결되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혼자 헤매고 돌아다니다 저녁에 아이가 권하는 식당을 가니 아이와 말싸움으로 부딪칠 일도 적었다.
'삶은 집착하기와 내려놓기 사이에서 균형 찾기(Life is a balance of holding on and letting go) ‘라는 경구를 보았다. 나를 위해 준비된 말인가. 나는 엄마의 소유물, 아바타가 아니니 엄마 뜻대로 바꾸려하지 말라는 딸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최근 친구의 조카가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인이 되었다. 1만 8,300명의 지원자중 12명을 뽑는 치열한 경쟁 끝에 선발되었으니 같은 한인으로 자랑스럽다. 고교졸업 후 대학에 가는 대신 미 해군 엘리트 특수부대(navy seal)에 갔다고 하여 놀란 기억이 난다. 제대 후 하버드의대를 나와 응급실에서 근무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우주인은 뜻밖의 소식이다. 그의 인생여정(life journey)에서 꿈을 좇는 다채로운 도전이 기대된다. 대학 대신 군대를 선택한 아들을 존중하고 믿어준 부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내게 필요한 부모의 덕목이다.
풀꽃은 풀꽃으로서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건만, 풀꽃보고 화려한 장미가 되라고 억지를 부린 것은 아닐까. 간섭과 참견을 멈추고 아이를 믿고 존중하며 원하는 삶을 살도록 응원해야겠다. 비가 갠 맑은 하늘 아래 센트럴 파크에서 5번가를 따라 걷는데 바람이 상쾌하다. 집착을 버린 자리엔 자유라는 바람이 분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