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국에 있는 문우와 오랫만에 통화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이제 우리들 마지막 숙제는 '죽음 준비'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나는 화장을 해서 어머니 뿌린 수목장에 같이 뿌려 달라 할 거라 했다. 아니면, 딸이 자꾸 섭섭해 하니 납골당에 넣든지. 그녀는 바닷가에 뿌려 달라 할 거란다. 화장하는 건 같아도 뼛가루를 뿌리는 장소와 보관하는 방법은 좀 달랐다.
  다음은 수의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애정은 기도처럼> 이란 이영도 수필집에서 그녀가 수의를 직접 만들며 아주 기꺼워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어차피 태워 없어질 옷이지만, 난 평소에 좋아하는 야들야들한 아이보리 쉬폰으로 드레스를 만들어 입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팔십 즈음 가면 자기 살아 생전 가족 친지 다 불러 '장례 파티'를 열 생각을 했다고. 하지만, 미처 수의 생각은 못했단다. 
  그 날, 우리는 가벼운 주제로부터 무거운 주제까지 넘나들며 거의 두 시간 넘게 수다 타임을 가졌다. 화기애애하고 따스하고 긍정적인 얘기들이라 그런지, 둘이 척척 대화가 맞아 떨어졌다.
  정서가 맞고 대화가 되는 벗과의 수다란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서로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대화,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유익한 대화에 난 얼마나 목말라 했던가. 
  그런 친구를 만난다는 게 왜 그리 어려운지. 심마니가  100년 묵은 산삼 찾는 게 더 쉬울 듯 싶다. 사실, 아는 사람이 많은 것과 진정한 마음의 벗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는 얘기가 다르다.
  "맞아요!", "저도 그래요!" 
  말끝마다, 공감하며 맞추는 리액션이  마냥 즐겁다. 주제가 바뀌어도 물 흐르듯이 흐른다. 오랫만에 단비를 맞은 듯 흔쾌했다. 
  며칠 지나, 그녀로부터 카톡이 들어왔다. 소뿔도 단김에 뺀다고 포목점에 가서 아예 수의 옷감을 사 왔단다. 게다가, 내 몫까지 열 두 마를 떠다 놨단다. 보내 주겠다며 이사간 새 주소를 카톡에 좀 넣어 달라고. 세상에! 내 것까지? 그녀의 '기빙 퍼슨' 심성은 한국 역이민 가서도 여전하다. 
  자기보다 여덟 살이나 어린 나도 수의 생각을 하는데, 오히려 자기는 못했다며 조급함이 생겼다 한다. 죽음이 어디 연령순이던가. 여명 기간의 장단이 있긴 하나, 절대 나이 순으로 가지 않는 게 죽음이다. 
  묘지에 가서 묘비에 적힌 사망 년도 수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머나!"를 연발하게 된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백세 시대라 해도, 젊은 나이에 간 묘비를 보면 '내가 너무 많이 살았나?' 하고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내 문우는 아직 길눈이 트이지 않아, 친하게 지내는 길라잡이 친구 한 명을 앞세우고 포목점으로 갔단다. 그런데, 그 포목점 아줌마가 장사 오십 년 이래 쉬폰으로 수의 드레스 만든다는 사람 처음 봤다며 손사래를 치더란다. 개명 천지라 해도 그런 법은 없다고. 결국,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들여 아주 고운 미색  천으로 사 왔다고 설명한다. 
  몸에 붙지 않는 부드러운 천으로 권해 줬다니, 리넨 아니면 명주 종류가 아닌가 싶다. 속곳도 만들어야 한다며 천연 나무로 가공하여 만든 인조 속곳감을 권해 그것도 함께 떠왔단다. 태울 건데, 그렇게 면 곱고 비싼 감이 필요 없으련만!
  "비쌀 텐데..." 하고 말끝을 흐리는 나에게 "그런 건 걱정하지 말라"며 주소나 찍어 달랜다. 곧 이어, 궁금해 하는 나를 위해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아주 색감이 좋아 보인다. 인조 속곳감이 천연 나무로 만든 것이라면, 불쏘시개 역할을 해서 타기는 잘 타겠다며 둘이 웃었다. 젖은 나무처럼 매운 연기만 풀풀 내며 쉬이 타지 않는다면 그것도 낭패다. 
  그런데, 수의 옷감 사진을 보자마자 간이 철렁 내려 앉는 건 또 무슨 이윤가. 곧, 죽음이 목전에 온 듯한 이 숨가쁨은 무엇인가. 인간의 심사는 참말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한 마디 덧붙였다.
  "수의, 미리 만들어 놓으면 더 오래 산데요!"
  "하하. 그거 포목점 아줌마 말이죠?"
  내 뜻은 그게 아니었는데, 이야기즉슨 그렇게 되나? 농담 한 마디로 금새 감정의 반전이 온다. 홀가분하다. 큰 숙제 하나 푼 아이처럼, 마음이 가볍다. 
  이제부터, 슬슬 수의 디자인이나 스케치해 봐야 겠다. 입히기 쉽고, 입어서 편하고 예쁜 옷. 수의는 호주머니를 안 만든다고 하니, 그것도 참고사항이렸다. 
  야들야들한 쉬폰 같으면 드레스로 만들 생각을 했는데, 질감이 틀리니 개량 한복으로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처음 구상했던 파티복 드레스가 아니라 전통적 수의에 더 근접하지 않을까 싶어 은근히 걱정된다. 그건 내 본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인들의 영명축일이 태어난 생일이 아니라, 순교한 바로 그 날이라는 거. 제삿날이 바로 영명축일, 영원한 삶을 시작하는 축복의 날이라는 거다. 믿는 이라면, 한번 쯤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영혼불멸을 믿는 나에겐, 죽음이란 그리운 이를 만나러 가는 여행이요 영생문으로 들어가는 초입이다. 긴 회랑을 걸어 들어가면, 그 끝 어디에선가 나를 기다리고 계실 분. 
  어서 오라고, 수고 했다고 큰 가슴 열어 맞이해 주실 그 분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서 ...
  거기 가면, 내 그리운 할머니도 어머니도 오빠도 내 아이도 나를 반가이 맞아 줄 것만 같아서...
  나도 이영도 시인처럼 가장 예쁜 드레스를 입고 순결한 신부인 양 그 분 앞에 꽃다이 서고 싶다. 그리고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이승에서 지은 모든 죄값은 종부성사로 사함 받고, 죽음으로 죄값을 치루었기에 그만한 호사쯤은 부려도 되지 않을까. 
  요모조모, 수의 디자인을 구상하노라면 죽음과도 좀더 친해지지 않을까 싶다. 삶과 죽음은 가장 잘 어울리는 짝이요 보색대비다. 평생 그림자같이 함께 살아 왔으니, 끝까지 사랑해야 하리. 
  즐거운 궁리거리가 하나 생겨 당분간 심심하지는 않을 터. 수의 옷감을 보내준다는 문우의 우정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값지고 귀한 선물이라 그런지, 기다려진다. 하지만, 죽음에겐 넌지시 한마디 던지련다.
  "죽음아, 너만은 옷감따라 바로 따라 오지는 말아다오. 디자인 구상하는 데만 해도 한 십 년은 족히 걸릴 지도 모른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