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세월이 비껴간 듯 젊고 예뻤다. 오랜 시간 공들여 가꾼 고운 피부에 잘 정돈된 눈썹과 또렷한 아이라인이 세련된 모습이었다. 젊은 애들이나 가는 줄 알았던 네일숍에서 손톱도 꾸미고 속눈썹 연장을 한 친구도 있었다. 화사한 옷차림에 어울리는 구두며 가방도 우아하고 고급스러웠다. 아이들을 유학 보내고 넘치는 시간을 외모 가꾸고 자기계발 목적의 취미생활에 쓰는 그녀들이 솔직히 부러웠다. 겨우 2주일의 짧은 한국 방문에도 가게의 물건들을 미리 주문하고 혼자 있을 남편을 위한 옷가지와 반찬 준비로 허둥대던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를 위로하고 싶어 피부 관리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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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사과향이 나는 그곳은 깔끔한 분위기에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고 있었다. “피부 톤은 고우신데 관리를 너무 안 하셨어요. 잡티가 많지만 관리 받으면 금세 좋아지세요. 눈썹이 많이 짝짝이신데, 문신 하시죠. 티도 안 나고 감쪽같아요. 반영구라 시간이 흐르면 지워지고 약품도 좋아서 부작용 걱정할 필요 없어요. 얼마나 편한데요. 립스틱만 바르면 화장 끝이라니까요.” 미모의 피부관리사는 말이 청산유수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뺨 왼편엔 캘리포니아에 사는 훈장처럼 햇볕에 그을린 자국이 여럿 있고 정리 안 한 눈썹이 보기 싫다. 쌍꺼풀진 동그란 눈에 복코라는 말을 듣는 코는 부모님의 유전자를 원망할 수준은 아닌데, 40대 이후의 얼굴은 본인 책임이라니 나의 무지와 게으름 탓이다.
“얼굴 경락 마사지 받으세요. 혈액 순환 좋아지니까 피부 톤이 맑아져요. 탄력 생겨서 젊어 보이고 얼굴도 작아지죠.” 큰 얼굴 콤플렉스로 사진 찍을 때 항상 뒤로 서던 나는 얼굴 작아진다는 말에 경락 마사지 10회를 등록하고 눈썹과 아이라인 문신을 부탁했다. “최대한 안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해주세요.” 어느새 쓱쓱 싹싹 칼과 가위로 눈썹을 정리하더니 연필로 눈썹을 그려 보인다. “어때요. 훨씬 깔끔해 보이죠?” 날렵한 갈매기 두 마리가 낯설다.
갑자기, 정말 난데없이 문신을 하고 말았다. 아이도 낳았는데 바늘로 찔리는 거 참을만하겠지 싶었으나 마취를 했어도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아팠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숯검댕이 순악질 여사의 눈썹에 방금 쌍꺼풀 수술을 받은 양 두 눈이 퉁퉁 부은 모습이 가관이다.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쓰면서 거의 변장 수준으로 다니다 보니 눈썹의 딱지는 떨어졌으나, 거울 볼 때마다 낯선 얼굴에 놀란다. ‘반영구라니까 언젠가는 지워지겠지.’ 혼자서 중얼거린다. 그런데 문제는 눈에 충혈이 생겨 안약을 넣었는데도 낫지를 않는 거다. 마취약이 눈에 떨어졌었는데, 그 때문인가. 큰 탈이라도 났으면 어쩌나.
껍데기에 불과한 젊고 예쁜 외모에 연연하다 벌을 받았나 보다. 내면의 성숙이나 지성미를 갖추어 잘 숙성된 와인 같은 자연스러운 외모를 지향해야 할 것을. 그나저나 경락마사지 10회는 언제 다 채우나, 괜히 샀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