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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내 연인은
상큼한 산앵두꽃
오로지
한 사랑에
목숨 거는 수줍음
꽃 진 뒤
늦게사 보내온
그대 사랑 잎 연서
이스라지꽃은 야생화로 일명 산앵두꽃이라 부른다.
꽃말은 '수줍음 '혹은 '한 사랑에 거는 목숨'이란다.
하얀 별꽃이거나 새색시 볼같이 연분홍꽃이 피기도 하는데 장미과에 속하는 꽃이라 해서 뜻밖이다.
전혀 요염하거나 화려할 것같지 않은 작은 꽃이 장미과라니!
내심, 내숭을 떠는 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든 꽃이 아름답고 기쁨을 주기 마련이지만. '이스라지' 란 어감이 퍽 정스럽다.
'있으라지...'
가지 말라고 붙잡아 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여인네 심사를 닮았다.
지난 날 되돌아 보면, 나도 그 말을 전해주고 싶은 한 사람쯤은 있을 게다.
푸른 하늘에 뜬 흰구름처럼 슬그머니 왔다가 희미하게 사라져간 사람이거나, 사랑인지 존경인지도 모르고 따르며 좋아한 사람이거나-
혹은 먼 세월 여울목 돌아 새삼 날 찾아낸 사람이거나-
누구든, 좀더 적극적으로 곁에 있어 달라는 고백을 했더라면 혹 아는가.
나도 산앵두꽃 여인이 되어 곁에 남아 있을지.
아니면, 나라도 나서서 졸라 볼 것을.
있어 달라 말 못하고 왜 이제 와서 '이스라지'하고 혼잣말로 되뇌는가.
안 그런 척, 모른 척.
짐짓, 딴전만 피우다 끝나 버린 사랑.
운명적 사랑이 왔다한들, 시시하다며 다 떠나 버린 건 아니었을까.
그땐 왜 그랬을까.
오는 사랑 막지 말고, 가는 사랑 잡지 말았어야 하는데.
좀더 능동적인 사랑을 했다면 내 인생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조금만 사랑에 협조해 주었더라면, '사모님' 소리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왜, 늘 "마음이 허락지 않습니다"란 말로 돌려 세웠을까.
"나가지 않는 것도 내 자유 의지입니다!"
분수대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다며 서운한 심사를 적어 보내 온 '그 애'한테도 그리 모질스런 엽서를 보내지 말았어야 하는데...
사랑하는 것도 자유 의지라며 제법 어른처럼 접근해 온 '그 애'.
까까중 머슴아가 훗날 그리 크게 성공할 줄 알았나.
또, 은근 슬쩍 마음을 엿보이며 가는 곳마다 편지를 보내준 '그 친구'.
자칫했으면 박사 부인이 될 수도 있었는데...
왜 매번 딴 친구를 소개해 주고 친구로 남아 버렸을까.
사랑인지 정인지 스쳐간 인연들 널어놓고 보니, '...데' '...데'로 끝나는 후회가 제법 된다.
하지만, 인생은 가정법도 반복법도 없는 법.
후회한들 무엇하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대도 똑 같은 선택에 똑 같은 몸짓으로 돌아설 것을 내가 아는데.
이별이 두려워 사랑하길 망설였던 나.
그것이 내 사랑에 대한 최선의 방어책인 양, 언제나 버스 지나간 뒤 손들기였다.
마치 꽃이 지고 난 뒤에야 잎이 피는 '이스라지'처럼.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상사화 사랑.
왜, 나는 아직도 그런 애달픈 사랑에 연연해 하는 것일까.
왜, 아픈 사랑만 낭만적 사랑이라 여기는가.
새 사랑을 시작할 때마다, '운명적 사랑'이라며 고백하는 친구를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운명적 사랑'이란 일생에 단 한 번 뿐, 고귀한 말을 남용하지 말라며 오히려 핀잔을 주었던 나.
이제사 나는 안다.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요 '운명적인 사랑'이란 것을.
그래,
'...데 ...데'하면 문장도 길어지고 글도 데데해진다고 고원 교수가 말했지.
데데한 후회보다, 먼 산 봉우리 잔설같은 흰 그리움으로 살자.
'이스라지, 이스라지' 꽃이름 불러 보다, "있으라지'..." "있으라지..." 하고 혼잣말로 되뇌어 본다.
꽃도 바보고 그 말 못해 본 나도 바보다.
참, 먼 길 돌아온 인생사요 한 순간에 스쳐간 젊은 날의 사랑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