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묘한 날
신순희
조반을 먹고 그냥 앞마당에 나섰다. 2월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 잡초가 쑥쑥 고개를 내밀었다. 벌써 잡초와의 전쟁을 치러야 하나. 아직은 쌀쌀한데 고것들 참 성미도 급하다. 이리저리 보이는 데로 잡초를 뽑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금사철나무 아래 누렇게 반짝이는 게 있다. 뭘까? 얌전하게 땅바닥에 놓여있는 동그라미 하나. 조금은 퇴색된 것이 구리는 아닌 것 같은데 설마 금일 리야. 집어보니 반지다. 내가 잃어버렸던 그 반지다. 그해 여름, 잡초 뽑다 잃어버렸던 결혼반지를 여섯 해가 지난 지금 찾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그토록 애타게 찾아도 없었는데 어디 갔다 왔을까. 금가락지에 3부 다이아몬드를 콕 박은 내 반지. 그동안 비 오고 바람 불고 또 비오고 흙이 쓸려내려 버렸을 텐데 어떻게 그 자리에 누가 가져다 놓은 것처럼 있을까. 흙 속에 파묻혀 있다 모습을 드러냈을까. 아니다. 반지에는 흙이 묻어있지 않다. 지난 세월, 내가 이 장소를 숱하게 보고 풀을 뽑고는 했었는데, 이제야 발견하다니. 난데없이 지붕에서 떨어졌나, 새가 물고 가다 떨어트렸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만 여유롭다.
반지를 뒷마당에서 잃어버렸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앞마당에서 찾다니, 6년 전 나는 애꿎은 뒤뜰만 뒤졌다는 말인가. 그때는 가만있다가 갑자기 가슴에 뭔가 휙 지나가고는 했었다. 그까짓 돌조각이 뭐길래 꿈까지 꾸었는지, 나를 떠난 반지가 버려지지 않고 누군가 발견해서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갸륵해서였을까, 반지를 되찾은 것이.
되찾은 반지는 빛이 바랬지만 틀림없이 내가 삼십 여년을 왼쪽 약지에 끼고 다녔던 그 다이아반지다. 그동안 주인을 잃은 세월이 야속했는지 버림받은 패물 같다. 자세히 보니 금가락지에는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 있다. 광물에도 마음이 있던가.
반지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세면대에서 비누질 거품을 내서 닦았다. 다이아몬드는 다시 반짝거렸다. 왼손 약지에 그 반지를 꼈다. 기쁠 텐데 그렇지 않았다. 신기하기도 하고 무슨 심오한 뜻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남편이 더 흥분했다. 이건 기적이라며, 자꾸 다이아반지를 보자고 했다. 반지를 잃은 뒤 다시 사주지 못해 내심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흥흥 콧바람을 불며 좋아했다.
오래된 반지에는 세월의 더께가 앉아있다. 결혼 삼십 여년이 지난 언약의 증표가 많이 낡았다. 우리 사랑 변치 말자 맹세하는 다이아몬드라지만 어찌 변치 않을 수 있을까. 이제 내 앞에 되돌아온 반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분이 묘하다. 반지를 찾고는 한동안 멍했다. 내가 반지를 잃어버렸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놀라워했다. 올해 좋은 일이 일어나겠다며 기뻐했다. 그렇다. 이 집 참 좋은 것 같다. 만일 우리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면 반지는 영영 찾지 못했겠지. 여기서 오래 살아야겠다는, 느닷없이 집터에 대한 믿음이 들기까지 한다. 다이아몬드를 다시 찾았다기보다 단단하게 변하지 않는 희망을 다시 찾은 느낌이다.
며칠 동안 꿈이 뒤숭숭했다. 잠을 자다가 손가락이 불편해서 일어나 반지를 빼고는 했다. 그동안 땅속에 파묻혀있었는지 땅바닥에 놓였었는지 알 수 없으나 패물대우를 받지 못했을 것이고 그것이 서운했을까. 반지를 되찾은 게 분명 좋은 일이건만, 뭔가 개운치 않았다. 몇일 동안 반지를 빼놓고 지냈다. 반지나 나나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앞마당을 나서면 반지를 되찾은 금사철나무 아래로 저절로 눈길이 간다. 나무 바로 밑은 그늘에 가려져 있다. 그곳에서 반지는 봄이 오고 가고 또 오고 하염없이 나의 눈길을 기다렸겠지. 내가 저를 알아볼 때까지 나를 기다려주었겠지. 반지를 다시 찾는 행운을 가져다 준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나는 모르겠다. 그때 마침 그곳에 내가 있었고 그 반지가 눈에 띄었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또 얼마나 오랜 세월 나를 기다렸을지, 아니 영원히 잊혔을 보석이다.
다이아반지를 손가락에 끼어보는 내 입가에 형용할 수 없는 미소가 번진다.
[2016년 2월]
--재미수필 제18집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