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담은 봉투
                                                                                      
'
커피 하나 왔다.'

딸의 산후 조리를 위해 동안 뉴욕에 다녀오신 대모님께서 내미신 봉투였다. 때론 밥보다 커피를 좋아하는 내게 여행지 특산의 커피를 주시곤 한다. 동부에서는 요즈음 'Dunkin Donut' 에서 나오는 커피가 인기라신다. 나도 맛이 좋다는 말을 들어 샀던 경험이 있다. 역시 향과 맛이 훌륭했다. 값이 비싸다는 흠만 아니라면 사고 싶은 것이다.

 

하루의 시작이 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종일 부엌을 지날 적마다 물통만한 잔에 커피를 보충한다. 아직 덜어놓은 커피가 남아 있음에도 새것을 맛보려는 욕심으로 봉투를 뜯었다. 진공된 포장 안으로 공기가 스미면서 볶은 진한 향이 퍼진다. 세상의 악취를 빨아들일 강하면서도 여운을 준다.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Hazelnut 맛이다.


포장을 뜯으며 무언가 쓰인 글귀를 발견했다. '아침이 봉투 안에 담겨있습니다.'  순간 가슴이 젖어 온다. 아침의 맑은 공기가 코끝에 전해온다. 희망을 주는 아침, 기대할 있는 하루를 약속해 주는 시간, 지치지 않은 힘이 넘쳐나는 그런 아침이 보인다. 비록 어제가 고통의 연속으로 지나갔다 하더라도 새로운 아침을 맞으며 용기를 얻는다. 모금의 커피는 오늘 하루의 행복을 미리 보여줌과 같다. 내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이 커피 잔에 녹아든다.

 

삶의 아침을 추억한다. 누구나 갓난아기를 보며 고통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시작은 설레는 일이며 무언가를 기다리게 하는 끌림이 있다. 하루를 계획하는 시간도 아침이다. 생의 아침은 안개였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겁게 내려앉은 농무였다. 전쟁 중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누구나 어렵게 자랐다.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 시작된 경제개발이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고 오늘날 자랑스러운 한국으로 서게 하였다. 짙은 새벽 안개가 걷히고 나면 더욱 선명한 햇빛이 드러나듯 나도 밝은 삶을 희망하며 살아왔다. 원하는 대로 되는 일보다는 아닌 쪽이 훨씬 많았다. 아픔을 견디며 계속 달려온 길이다.

인간 수명 100 시대다. '인생황혼'이라는 말을 어느 나이 쯤에 써야 할지 모르겠다. 60대에 은퇴하고 남은 시간을 관리하는 일이 이슈가 되었다. 다른 이침을 맞게 되는 셈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이루지 못한 음악의 꿈을 키우려 한다. 배우고 연습하며 매일 나아가리라.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스스로 칭찬할 있기를 소망한다.

주어진 자기만의 봉투가 있다.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겉에 아무런 표시가 없다 하여 비어있는 것은 아니다. 봉투를 열어 어떤 향기를 맡을 있으려나. 살아오면서 담아놓은 많은 것들이 쌓여 어쩌면 알아낼 없는 냄새를 풍길는지도 모른다. 냄새보다는 향기로움을 주고 싶다. 봉투가 넘쳐 찢어지기 전에 욕심으로 가두어 두었던 것들을 과감히 꺼내야겠다. 버려야 , 나누어야 것들을 살피고 정리해야겠다. 간직해야 소중한 기억들로 채우련다. 희망이 담긴 커피봉투를 닮고 싶다. 아침을 숨쉰다.